배당 매력 감소와 건전성 약화, AI 충격까지
느슨해진 심사, 최저치로 낮아진 금리 완충
보험사로 이어지는 전이 통로, 평가 불투명성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이란 사태에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린 사이 미국 사모신용 시장에서는 대출 펀드의 환매 요청이 연쇄적으로 쏟아지며 유동성 불안이 번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그 이름만으로 안심했던 블랙록마저 환매 제한에 나섰다.
◆블랙록마저 제한
지난주 6일 블랙록은 산하 HPS(작년 블랙록이 인수 완료)가 운용하는 기업대출펀드(HLEND)의 1분기 환매 집행 금액을 순자산가치(NAV)의 5%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투자자들의 1분기분 환매 요청액이 약 12억달러로 NAV의 9.3%에 달했으나 6억2000만달러만 지급하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물론 5% 상한 자체는 펀드가 직접 내준 대출이라는 비유동 자산의 헐값 매각을 막기 위해 환매 약관에 설계된 장치여서 그 자체로 이례적인 조처는 아니다. HLEND와 마찬가지로 개인투자자 자금을 모아 기업에 대출하는 비상장 BDC(기업개발회사)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구조로 이번 제한도 그 틀 안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HLEND에서 이 상한이 발동된 것은 관련 펀드 출범 이래 처음이다. 개별 운용사에서 불거진 환매 압력이 업계 최대 업체로까지 옮겨붙었다는 점에서 사모신용 시장 전반의 심리 위축을 가늠하게 한다. 앞서 블루아울 기술 BDC 펀드와 블랙스톤 주력 BDC 펀드인 BCRED에서 각각 NAV의 15.4% 7.9%에 달하는 환매 요청이 쏟아진 바 있다.
◆작년 디폴트 최고치
최근 BDC에서 투자자들이 잇달아 회수에 나선 것은 한 가지만이 아니다. 사모신용 펀드 대출의 대부분은 단기금리에 연동된 변동금리 구조인데 작년 하반기부터 정책금리가 하락하면서 펀드가 지급하는 배당 매력이 줄었다. 또 금리가 내렸다고는 하나 그 전까지 누적된 고금리 부담이 이미 차입자의 상환능력을 깎아놓은 상태여서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진 터였다.
여기에 AI가 BDC의 가장 큰 대출처인 소프트웨어 업종을 뒤흔들었다. HLEND 포트폴리오의 19%가 소프트웨어 관련이다. 사모 대출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아 손실이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유사 차입자로 구성된 공개 레버리지론 시장에서는 이미 타격이 가시화됐다. 모닝스타 LSTA 지수 기준 소프트웨어·서비스 업총 대출의 올해 손실은 약 6%로, 미국 레버리지론 전체의 연초 이후 성과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린 상태다.

실제 부도율도 가파르게 올라 관련 우려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피치레이팅스에 따르면 미국 사모신용의 작년 한 해 연간 부도율은 9.2%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년 기록 8.1%를 큰 폭으로 넘어선 것이다. 추적 대상 302개 기업 중 28개 차입자에서 파산과 채무 재조정을 합쳐 38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느슨한 심사, 얇은 완충
부도 우려가 가시지 않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사모신용 시장이 본격적인 디폴트 사이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UBS의 매튜 미쉬 전략가는 최악의 경우 사모 대출 부도율이 1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추산했고 PIMCO의 로피 카루이 애널리스트는 "직접대출도 결국 전면적인 부도 사이클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KBRA에 따르면 미국 BDC 시장(비상장과 상장형 모두)의 운용자산 규모는 작년 3분기 기준 약 5500억달러 수준으로 파악됐다. 통상적으로 인용되는 미국 사모신용 운용자산 규모 1조8000억~2조달러를 대입하면 그 비중은 30% 안팎으로 추정된다.
관련 전망의 배경에는 사모신용 시장이 팽창해 온 과정 자체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 강화로 은행권의 위험대출 여력이 줄어든 사이 사모신용이 '미들마켓 기업(중견기업)' 대출의 빈틈을 파고들며 급팽창했다. 문제는 돈이 몰리는 속도만큼 대출 심사 기준도 느슨해졌다는 점이다. 차입자의 상환 여력이 충분한지보다 자금을 집행하는 것 자체가 우선시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쌓인 대출이 여전히 높은 차입 비용과 AI 충격이라는 이중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 크롤·스텝스톤이 사모 대출 약 3000건을 집계한 결과 신규 대출에서 대출자가 받는 금리 마진은 미국·유럽 모두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차입자의 이자보상배율(이자비용 대비 EBITDA 비율)은 10년 만에 최저치에 근접해 있다. 대출자의 보상도, 차입자가 이자를 감당할 여력도 함께 줄어든 셈이다.

금리 마진이 작다는 것은 대출 기간 쌓이는 이자 수입이 적다는 뜻이어서 부실이 발생했을 때 손실을 메꿀 여력이 그만큼 작다는 뜻이 된다. 이자보상배율이 낮다는 것은 경기가 조금만 꺾여도 차입자가 부도 문턱을 넘기 쉬운 상태라는 의미다. 부도가 현실화했을 때 채권자가 입는 타격도 커진 구조인 셈이다. 사모신용 시장 추정 규모가 1조8000억~2조달러로 최대치로 불어난 점을 고려하면 그 파장의 범위도 과거와 다를 수 있다.
◆불확실성 층층이
관련 위험이 가격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한 곳은 상장 BDC다. 비상장 BDC와 달리 주가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상장 BDC에서는 투자자 심리가 곧바로 가격에 반영된다. S&P BDC 지수 기준 상장 BDC 시세는 NAV의 82%에 거래돼 2022년 말 이후 최대 할인폭을 기록 중이다. 블랙록의 상장 BDC인 TCP캐피털 주가는 보유 대출 평가액을 19% 감액한 뒤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사모신용의 파장이 업계 내부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시장에 자금을 대는 주체에 있다. 사모신용 자산을 대거 편입해 온 곳 상당수가 계열 생명보험사다. 아폴로 계열의 아테네, KKR 계열의 글로벌아틀란틱 등이 대표적이다. 운용사와 계열 보험사 사이에서 자산이 오가는 구조다. 사모 대출의 부실이 보험업까지 전이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보험사가 보유한 자산 중 시장에서 거래되는 참고 가격이 거의 없어 내부 평가 모형에 의존해 값을 매기는 레벨3 자산의 비중이 가파르게 늘었다는 거다. 블루아울이 펀드 환매를 중단한 뒤 일부 대출 자산을 계열 보험사 쿠바레에 이전한 정황도 나왔다. 사모신용 자산의 진짜 가치를 시장이 알 수 없고 이를 떠 앉은 보험사의 위험도를 외부에서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층층이 쌓여 있는 상태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