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칠 줄 모르는 유가급등 양상으로 국제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지친 모습이 역력하지만,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성장엔진을 강하게 돌리고 있는 중이다.이미 미국경제는 둔화조짐이 역력하지만, 아시아나 유럽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유가급등이 당면한 중대사안으로 떠오르고 있고, 여전히 불균형과 불안정성이 가득한 글로벌 경제는 당분간 '탄력적인 회복(resilience)' 양상을 보기 힘들어질 것 같다.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주말 제출한 보고서("Canary in the Coal Mine ")에서 2005년 세계경제 전망은 계속 어두워지고 있으며, 아마도 한국이 불안정한 아시아 경제와 나아가 세계경제에 대한 '탄광의 카나리아', 말하자면 조기경보 역할을 담당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 왜 지금 하필 한국에 주목하는가?최근 한국경제의 지표들은 최악이다. 수출수요도 이제는 둔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두 달동안 한국의 전년대비 수출 증가율은 36%에서 23%로 무려 13%포인트나 급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수도 침체양상을 뵈고 있어 8월에 소매 및 도매판매액을 합친 매출액은 1.5% 감소세를 나타냈다. 설비투자도 감소했고 서비스부문의 생산액은 8월에 전년대비 1.7% 감소했다.내수가 위축되면서 재고가 8월에 전년대비 3.5%나 급증했고 고용 역시 7월에 0.3% 감소한 뒤 8월에도 1.6% 추가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모건스탠리가 예상했던 2005년 한국 경제성장률 3.8%는 하향 리스크가 커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8월 초 저점 대비 22%나 급등한 한국 종합주가지수를 감안할 때 이 같은 상황은 엄청난 충격이 될 수 있다.지금 왜 한국경제에 대해 이렇게 길게 늘어놓고 있는가? 첫째, 한국은 일본, 중국에 이어 아시아 3위 경제대국이고, 오랫동안 아시아의 가장 역동적인 '호랑이'였다. 1986부터 10년간 한국은 평균 8.5%의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성장률이 4.6%로 하락했지만, 이는 여전히 선진국 경제의 평균 성장률 2.7%를 크게 뛰어넘는 것이었다.하지만 한국은지금 아시아 경제의 성장모델이 가지는 오류 전체를 온 몸으로 나타내고 있는 중이다. 개인소비의 취약성이 갈수로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일자리 불안과 막대한 연금제도의 문제점이 이중적인 문제점으로 노출된 상황이다. 이렇게 되자 한국은 계속 수출 의존적 성장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은 거의 중국시장으로의 수출기계가 되어가고 있다.문제는 현재 한국의 수출 둔화가 중국의 경기둔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수출둔화는 주로 반도체가격 하락에 의한 것이 가장 크다고 판단된다. 만약 중국의 경기둔화가 본격적으로 수출에 반영되면 한국수출 전선은 또다시 침몰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외수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앞으로 갈수록 경기가 하락하는 길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시아의 두 기둥, 일본과 중국이 흔들린다그렇다면 나머지 아시아 경제들도 한국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만 가지고 아시아 경제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나머지 경제들 역시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즉 이들 경제 모두 소비가 부진한 반면 중국으로의 수출 강세로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사실 여기서는 일본이 가장 중심적인 사례다. 지난 2년동안 일본 경제성장의 44%는 수출이 담당했고, 2003년에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전체 수출성장의 40%를 차지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경기가 둔화되면 일본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최근 일본 수출도 둔화양상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단칸지수가 예상 외 강세를 보였지만, 이것은 지난 경기침체 때 가장 타격이 컸던 제조업 분야의 약진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평가된다. 민간소비는 오히려 상당히 둔화된 것으로 확인된다. 8월 급여세대 지출이 전년대비 0.2% 감소한 것이 상징적이다.모건스탠리는 2005년 일본경제성장률이 1.3%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오일쇼크 등의 변수를 감안할 때 다운사이드 리스크가 확대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그리고 중국이 있다. 사실 아시아의 '메인 이벤트'는 중국에 모두 쏠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까지 중국의 경기둔화 정도는 제한적이다. 연초 산업생산 증가률에 비하자면 9월 산업생산 증가율 15.9%는 약 3.5%포인트 정도 감소한 정도다.그러나 중국경제의 과열양상이 해소되려면 산업생산이 약 10%포인트 정도는 줄어들어야 된다. 최근 시장에서는 중국정부가 과열억제 정책에서 한발 물러설 것이란 루머가 나돌고 있지만, 믿기 힘든 일인 것 같다.현재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경제의 과열양상에 대해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만약 인플레 압력이 더욱 강화되고 투자 및 부동산 과열이 심화되면 '참을성'이 폭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우리는 중국의 대출 억제 등 정책적 경기과열 억제정책보다는 금리인상을 통한 조정이 더 좋을 것이라고 계속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 두 가지 정책을 적절하게 혼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보인다.만약 여기서 억제정책을 완화시킨다면 중국경제는 급격히 끓어오를 수밖에 없고, 그러면 남은 일은 '경착륙'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세계경제 전체가 혐오하는 결과일 것이다. 어쨌든 중국의 앞으로의 전망은 경기 둔화 쪽이고, 이것은 중국에 의존하는 아시아 수출 경제로서는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도 경기둔화 중, 미국 경기회복도 '품질저하 중'유럽의 핵심경제인 독일도 지난 8월 제조업주문이 전월대비 1.5% 감소했고, 전년대비로도 보합수준에 머물러 우려를 낳고 있다. 사실 이런 약세는 해외주문의 감소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서 지난 해 독일 수출증가분의 28%가 대중수출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독일 산업생산 둔화와 실업률의 재상승은 통계상의 오류가 아니다.더구나 영국도 본격적인 경기둔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생산이 3개월째 감소하고 있고, 전체산업생산도 8월에는 0.8%나 감소했다. 또 영국인들의 소득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서비스부문 서베이지수도 약화됐다. 이는 유럽 전체 서비스산업 둔화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마지막으로 미국. 2분기 성장률이 3.3%로 나온 것은 위안이 됐지만, 그 성장의 '품질'은 좋지 않았다. 특히 9월까지 최근 3개월간 미국 소매점 매출액은 계속 악화된 것으로 확인된 상태다. 유가상승이 겹치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회복탄력'은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결론은? 아직 세계경제 전반이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3개월 이상 유지한다면야 '오일쇼크'를 우려하겠지만,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하지만 오일쇼크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 전반의 둔화양상이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고 판단된다. 이는 2005년 세계경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지금 세계경제의 경기하락 가능성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경제가 이런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고, 그 선봉에 한국경제가 놓여있다. 한국경제라는 '탄광의 카나리아'는 나머지 아시아경제와 세계경제의 앞날에 대한 분명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