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구조, 회사채 평가시장에 편중"
[뉴스핌 Newspim] LIG건설, 웅진그룹 그리고 STX에 이어 동양그룹까지 한 때 대기업 명단 상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던 굴지의 업체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기업들에 대한 국내 신용평가사의 대응은 '뒷북'이었단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한 것일까. '뒷북' 등급 조정은 언제까지 반복될까. 자본시장 발전의 관점에서 우리 신평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전문가와 당국이 고민하는 발전방향을 짚어 본다. <편집자주>
[뉴스핌=김선엽 기자] "국제 신용평가회사가 위기를 경고하기는 커녕 위기를 키우는 일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용평가사들의 등급평가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대가 마련되고 있다"
지난 2011년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70년 만에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하자 글로벌 신용평가시장의 과점체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강화됐다. 지난해 1월 유럽 9개국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 때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다.
국내는 더욱 심하다. 중견기업이 하나씩 쓰러질 때마다, 조기경보 발령에 실패한 신평사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불거진다.

그렇다면 국내외 신평사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의 근간은 무엇일까.
우선 일관성 없는 등급 제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신평사들이 은행과 구조화 상품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가 정작 위기가 터지자 무더기 등급 강등을 실시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신평사들이 2006~2007년 'AAA' 판정을 내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가운데 90%가 정크본드(투자 부적격 등급 채권)로 판명됐다.
문제는 이런 실패에도 글로벌 신용평가시장에서 3개사의 영향력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글로벌 신용평가 시장에서 95%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대기업과 글로벌 은행은 물론 국가등급까지 좌지우지하면서 투자자의 불만은 날로 커진다.
우리나라에서도 3개 국내 신용평가사가 시장을 삼분하고 있다.
이에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안정위원회(FSB)까지 나서며 신평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이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등급 인플레가 횡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시장원리가 작동할 수 없는 신평사 시장의 고유한 특성이다.
일반적인 경쟁시장에서는 수요자가 제시하는 지불의사가격이 상품의 품질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의 질이 좋을수록 수요자는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
신평사 시장에서는 다르다. 피평가사로서 수수료를 지불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신평사가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통해 자신에게 등급을 부여했느냐가 신평사 선택의 기준이 아니다. 오로지 회사채 발행에 유리하도록, '높은' 등급을 주는 신평사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신평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들여가며 등급평가 방법을 개선할 유인이 적어진다. 대신 고객인 피평가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수한 등급을 부여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신평사가 제공하는 신용평가 서비스가 비경합성(많은 사람들이 경합하지 않고 동시에 소비할 수 있는 것)과 비배제성(가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소비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장의 가격매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특히 국내 신평사들의 경우 수익구조가 회사채 평가시장에 치우쳐 등급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더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동국대학교 강경훈 교수는 "국내 신평사의 경우 업력이 해외 신평사에 비해 짧고, 구조화채권·연기금·뮤추얼펀드 등에 대한 평가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탓에 회사채 평가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라며 "이 결과 개별 신평사 수입에서 회사채 평가수수료가 차지하는 바중이 높아 특정 회사 내지 기업집단으로부터 등급상향 조정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구조적 한계 때문에 신평사 시장을 개선하고자 하는 다양한 의견들, 예컨대 신평사 시장 개방, 독자신용등급 제도 도입, 복수신용평가제도 폐지 등이 꾸준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부딪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평사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속시원한 해법이 아니라는 한계 때문이다.
대신 당국은 애널리스트 등록제 도입, 구두의뢰 및 예상등급 제시(등급쇼핑) 금지, 신평사간 정보 교환 금지 등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8월 말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지난해 3월에 발표했던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의 내용 대부분이 들어갔다"며 "과거와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