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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FTA] 윤상직 장관이 소주회사에 전화한 이유

기사입력 : 2014년11월12일 11:05

최종수정 : 2014년11월12일 13:49

중국측 "발효소주만 수입하겠다"… 제조업체 입장 반영해 '수출 보장'

[세종=뉴스핌 최영수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몇 차례의 결렬 위기를 극복하고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9일 오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내 한 소주회사 상무에게 긴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한중FTA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양국 통상장관이 직접 만나기로 한 날이다.

◆ 중국측 '뒤집기' 요구에 수출업체 실익 지켜내

▲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지난 6일 한중FTA 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협상에서 중국측이 품목별원산지결정기준(PSR)에 '발효공정을 넣은 소주만 인정하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소주는 대부분 '희석식 소주'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국의 소주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중국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주면 우리 소주제품이 FTA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고, 받아주지 않으면 촉박한 일정에 자칫 협상이 결렬될 수 있었던 위기의 상황이었다.

윤 장관은 잠시 협상을 중단하고 국내 한 소주회사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산지규정에 '발효공정'을 넣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묻기 위해서다. 돌아온 답은 생산공정과 설비를 모두 바꿔야 한다는 것.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윤 장관은 실무진들과 논의 끝에 묘안을 짜냈다. 해당 주류품목의 원산지규정에서 중국측이 원하는 대로 '발효공정'을 넣되 '소주'는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측의 입장을 살려주는 동시에 우리의 실익을 지켜낸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산지 규정이 또 다른 무역장벽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장관님이 직접 업체와 연락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뛰셨다"고 전했다.

◆ 두 번의 협상결렬 위기…"고성에 금지어까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행된 제14차 한중FTA 협상은 이처럼 '원산지 규정'을 놓고 나흘 밤낮으로 옥신각신했다.

당초 협상단은 지난 4일과 5일 실무협상을 통해 상품분야 등 핵심쟁점을 합의한 후 6일 장관회담에서 최종 마무리 짓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원산지 규정을 놓고 이견이 커지면서 예정에 없던 나흘간의 밤샘협상이 시작됐다.

7일 오전 협상에서는 중국측이 앞서 합의된 내용을 번복하고 나왔다. 전일 밤을 새우면서 12시간 동안 협상끝에 합의한 내용을 번복하자 우리측 수석대표인 우태희 통상교섭실장은 "잠도 못자고 12시간을 협상했는데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냐"면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그날 오후 중국측이 '다시 협상을 해야하지 않겠냐'는 요구를 해왔고 마지못해 협상을 재개했다. 

이튿날에는 중국측이 내부문제로 이견이 커지면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두번째 결렬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일요일이었던 9일 아침 우 실장이 다시 전화를 해서 오전 10시 협상이 재개됐고, 월요일 새벽 2시까지 줄다리기 끝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 우태희 실장·김영무 단장 투톱체제 '밀당' 성과

▲ 산업통상자원부 우태희 통상교섭실장(가운데)와 김영무 동아시아FTA추진기획단장(왼쪽)이 한중FTA 협상에서 논의하고 있다.
협상장에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주로 수석대표인 우태희 실장의 몫이었다.

우 실장은 "외교부 협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통상협상은 자국산업의 실익이 걸린 것"이라면서 "때로는 고성도 지르고 삿대질까지도 했다"고 전했다.

마지막 날에는 중국측의 뒤집기 요구에 협상에서 금기어 중에 하나인 'cheat(기만하다)'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중국측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면 이번 협상이 아주 끝날 수 있는 위기였지만, 다행히 중국측이 같은 말로 받아치면서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주역은 김영무 동아시아FTA 추진기획단장(국장)이다. 우 실장이 주로 공세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김 단장은 FTA 전문가로서 '밀당'을 통해 구체적인 실익을 챙기는 역할을 했다.

우 실장은 '제조업 이익이 적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협상이라는 게 한쪽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농업을 보호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었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의 실익이 다소 미흡하기는 하지만 농업분야를 대폭 개방할 수는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 실장은 "이번(APEC 정상회의) 기회를 놓쳤다면 모멘텀을 잃어 연내 타결도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자칫 9년간 협상을 끌었던 한-캐나다 FTA와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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