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을 견인하는 중국 기술기업들의 요람
[뉴스핌=최헌규 중국전문기자]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시내 중심도로 선난다다오(深南大道, 심남대도)는 동서를 관통하는 이 도시의 축선이다. 이 축선을 따라 도열한 평안(平安)국제빌딩, 자오상(招商)은행, 텐센트 사옥 등의 고층빌딩 숲은 현재진행형인 이 도시의 영화를 웅변해준다. 이 도로에 어둠이 내리면 선전은 휘황찬란한 신천지로 도시의 또다른 풍모를 자랑한다.
경제특구가 막 개설될 무렵인 1980년 이 도로는 폭 7미터에 길이가 고작 2.1킬로미터에 그쳤다. 그나마 당시로서는 특구에서 가장 긴 도로였다. 현재 도로 폭 135미터, 총 길이 25킬로미터로 확장된 이 도로는 선전의 발전상을 짚어주는 좌표가 됐다.
개혁개방 바람이 불어닥치자 낙후한 해안마을 선전에는 구직자들이 전국 농촌으로부터 몰려들었다. 이른바 ‘선전을 향한 농민공 붐’이었다. 1982년 선전 장난감 공장 직공을 1세대로 한 농민공은 1989년 100만명으로 불어났다. 이 시기 농민공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 칭춘이짠(靑春驿站, 청춘의 정거장)에도 잘 그려지고 있다.
단순 조립위주의 수출 제조에 머물던 선전 산업에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오랫동안 싸구려 라디오와 짝퉁 휴대폰, 짝퉁 TV를 만들던 선전기업들 중에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 여기에는 선전 시 당국의 혁신적인 제도개혁이 단단히 한몫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 선전 당국은 민영기업들의 재산권 보호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획기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다른 지역에 앞서 사유재산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를 내놓자 선전에는 혁신바람이 태풍처럼 몰아치고 민영기업 창업이 봇물을 이뤘다.
중국 광둥성 선전의 전자상가 밀집 지역인 화창베이(華强北)내 사이커(賽格)시장 전경 [사진=신화통신] |
화웨이를 비롯해 OPPO VIVO ZTE 촨인(傳音, Tecno) TCL 등 내로라하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줄줄이 이곳에서 둥지를 틀었다.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는 “1987년 선전시에서 민영기업 재산권 보호 문건이 안나왔다면 오늘날 화웨이도 없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때문인지, 그는 “화웨이 헤드쿼터를 영원히 선전에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 도입으로 선전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 IT 신흥산업이 활짝 꽃을 피우면서 개혁개방의 제2 번영기에 접어들었다.
1999년 인터넷 바람을 타고 28세의 젊은 마화텅이 선전에서 창업한 텐센트는 매출 2377억위안(2017년), 시가총액 아시아 최대 규모의 기업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중국의 카톡인 텐센트 위챗은 유저만 10억명이 넘는 거대한 SNS 왕국을 형성하고 있다.
혁신의 도시 선전은 스타트업의 천국과 같은 곳이다. 선전의 첸하이 (前海) 자유무역구 한곳에서만 매년 3만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다니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급 기업들도 넘쳐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2017년 기준 신흥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50%를 훌쩍 넘어섰다. 성장의 엔진이 전통제조에서 스마트 혁신기술로 완전히 탈바꿈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선전은 제조대국 중국을 기술강국으로 바꿔가는데 있어 견인차역을 자처하고 있다. 선전에선 핀테크와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신기술 분야에서 매일 평균 51건의 첨단 기술 특허가 쏟아져 나온다. R&D 투자 규모는 도시 전체 GDP의 4%를 넘는다.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같은 기라성같은 도시가 있지만 중국내 4차산업혁명 기술 주도권은 일단 선전의 수중에 들어갔다는게 중국 업계의 판단이다.
세계는 한때 선전을 두고 중국 짝퉁의 본산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이런 오명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입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오히려 글로벌 소비자들은 이제 화웨이 스마트폰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삼성과 워렌 버핏 등 세계적인 자본은 선전 전기차 기업 BYD에 거금을 투자하고, 무역업자들은 선전기업 DJI 드론을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