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속살해 사건으로 본 한국 사회의 민낯
내달 15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세상에 어떤 자유가 주어진다 해도, 절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부모'다. 그 부모가 게임이라면, '리셋'해서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최악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또 어떤 삶을 살까. 그동안 외면했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연극 '손님들'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연극 '손님들'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연극 '손님들'(작가 고연옥, 연출 김정, 제작 프로젝트 내친김에)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시작된 작품. 2017년 차범석희곡상, 동아연극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등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다. 올해 국립극단 기획초청 공연으로 다시 한 번 관객들과 만난다.
작품은 소년이 부모를 죽인 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면서 길에서 만난 손님들을 초대하며 각양각색 이야기를 펼친다. 독특한 점은 집에 초대된 손님들이 버려진 길고양이 '3단지', 더럽혀진 초등학교의 동상 '오뎅', 무덤가에 사는 '동수아저씨'라는 것.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무시하기 일쑤인, 어딘가 모자라거나 버림 받은,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들이다.
연극 '손님들'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소년이 부모보다 손님들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려주기 때문. 그들이 하는 말의 중요도를 떠나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소년은 위로를 받는 게 아닐까. 이들은 예의를 갖춰 식사하는가 하면, 신나는 춤도 춘다. 그러나 그 어떤 파티보다 기괴하다.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현실의 비극을 더욱 강조한다.
성공을 꿈꿨지만 좌절한 아버지, 대학까지 포기하고 결혼해 영부인을 꿈꿨지만 실패한 어머니. 두 사람은 그 분노를 소년에 대한 학대로 푼다. 허황된 욕망만 바라보며 제자리, 혹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부모는 소년을 나이보다 어른스럽게 만들었다. 소년이 초대한 손님들보다 못한, 거의 없는 이들의 유대관계는 결국 소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연극 '손님들'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부모를 죽였지만 소년은 매일 등교하기 전 그들을 위해 식사를 차린다. 등하교 때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 잘 해야해"라며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소년이 고픈 것은 아주 작은 부모의 사랑,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평범한 가정의 행복함일 뿐. 비록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공연 내내 이어지는 다정한 소년의 모습은 안쓰럽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최근 존속살해는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이 됐다. 지난해 부모와 동생을 살해하고 뉴질랜드로 도주한 '용인 일가족 살인 사건', 올해 초 현직 국회의원 친형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 얼마 전 부천에서 휴학생이 부모를 죽인 사건 등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한달에 4.5건의 존속살해가 발생한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연극 '손님들'은 오는 7월15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