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발음으로도 '하산(Хасан)'
이주 조선인들 외치던 단어가 지명으로
[서울=뉴스핌] 이고은 기자 = 북러정상회담을 위해 전용 특별열차로 방러길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연해주 내 하산역에 도착, 잠시 열차에서 내려 인파의 환영을 받았다. 이에 러시아 안에 있지만 한국식 지명을 가진 '하산' 지역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연해주 정부는 24일 하산역에 정차해 열차에서 내려 환영인파에 인사하고 알렉산더 코즐로프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 등 러시아 정부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김 위원장 사진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 땅을 밟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방문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러시아와 관계 발전의 첫 걸음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러시아 연해주 주정부 홈페이지] |
◆ 조선인들 외치던 '하산'이 지명으로
김 위원장의 열차가 정차한 하산은 두만강 건너 연해주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과거부터 많은 우리 선조가 건너가 살았던 곳이다.
러시아에 있음에도 '하산'이라는 우리말에 가까운 지명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어 발음으로도 '하산(Хасан)'이며, 북한어로는 '하싼'이다. 하산 지역이 속한 군의 이름도 하산 이름을 딴 '하산스키(Хасанский район)'다.
고려인 출신 박 미하일 교수에 따르면 하산에는 1811년부터 조선에 연속적인 기근과 관리들의 착취로 어렵게 생활한 한인들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땅으로 이주해 집단 생활을 해왔다.
당시 러시아 관리들은 하산 지역에 자국인들이 거의 없어 농사를 짓는 한인들의 불법 월경을 막지 않고 오히려 장려했다.
'하산'이라는 이름 역시 우리말에 있는 '산에서 내려오다'라는 의미를 가진 같은 단어가 그대로 차용돼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국립도서관 지명사전에 따르면 집단 이주한 조선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러시아 관리들이 듣고 마을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됐다.
조선인들은 농사를 짓는 것 외에는 늘 산으로 올라가 땔감을 구하는 일을 했고, 해질 무렵 무리를 이끄는 노인이 '하산' 하고 외치면 일제히 땔감을 지고 산을 내려가는 모습이 독특해 관리들이 마을 이름을 '하산'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 중단된 '나진-하산 프로젝트' 주역도시
하산은 남북한과 러시아 간 교통·물류 인프라 복구 프로젝트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주역을 맡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박근혜 정부까지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다 지난 201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중단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경협이 재개되면 다시 시작될 '1호 사업'으로 예상되는 등 남북러 3국 모두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유엔 대북제재가 아닌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에 해당해 상대적으로 제재 해제가 쉽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 위원장이 정차역으로 하산을 선택한 데에는 러시아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번 북러정상회담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를 꾀하고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바라는 상황에서 하산이 가진 경제적 의미를 고려한 선택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우수리스크를 지나 한국시간으로 오후 5시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