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선수에 술자리 참석 강요하고 팔베개 시켜
"남자선배들이 불러 옆에서 술 따르라고 지시"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국내 직장운동부(실업팀) 선수들이 언어 및 신체폭력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여성선수는 지자체 관계자들로부터 술자리 참석을 강요받거나 코치진에게 불법촬영 피해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소속 56개 종목 실업팀 선수 4069명 중 12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3.9%(424명)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신체폭력은 15.3%(192명), 성폭력은 11.4%(143명)가 각각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인권위가 실시한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언어폭력 15.7%, 신체폭력 14.7%, 성폭력 3.8%)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5일 발표한 '직장운동부(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중 일부 [사진=국가인권위원회] |
신체폭력은 '머리박기, 엎드려뻗치기 등 체벌'이 8.5%로 가장 많았다. '계획에 없는 과도한 훈련'(7.1%), '손이나 발을 이용한 구타'(5.3%) 등이 뒤를 이었다.
폭력 경험 주기는 '일 년에 1~2회'가 45.6%, '한 달에 1~2회'가 29.1%였다. '거의 매일' 신체폭력을 당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8.2%에 달했다.
정신적 학대 수준의 폭력과 훈련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다. 한 실업팀 선수는 인권위 조사에서 "이전 소속팀에서도 자살시도를 해서 나왔고 최근에는 감독과의 갈등으로 두 번째 자살시도를 했다"며 "대부분 선수들은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저 '내 정신력이 약하다'고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 선수 중에는 코치가 팔베개를 시키거나 신체를 더듬는 등 성폭력 피해도 적지 않았다. 성폭력은 '신체의 크기나 모양, 몸매 등에 대한 성적 농담 행위'가 6.8%로 가장 많았다.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거나 팔베개, 마사지, 주무르기 등을 시키는 행위'는 4.1%로 집계됐다. 특히 여성선수 11명, 남성선수 2명은 '신체부위 촬영'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했으며, 성폭행(강간)피해는 여성선수 2명, 남성선수 1명으로 드러났다.
한 30대 실업팀 선수는 "어떤 지도자분들은 술 마실 때 무릎 위에 앉아보라고 하거나 시합이 끝난 후 '왜 나한테 안기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며 "남자선배들도 술 마실 때 불러서 옆에서 술을 따르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실업팀 선수도 "지자체 관계자들이 매일 여성 선수들을 술자리에 끌고 나간다"며 "심지어 감독님은 강압적으로 여자선수들에게 자기 지인을 소개시킨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실업팀 선수 인권 교육과 정기적 인권실태조사 실시 △가해자 징계 강화와 징계정보시스템 구축 △실업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표준근로계약서 마련 △공공기관 내부 규정(지침) 및 지자체 실업팀 관련 조례 제·개정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관련 정부부처와 대한체육회 등에 실업팀 선수에 대한 인권보호방안을 마련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