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택공급 방향은 공공임대주택..분양 늘리지 않는다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무주택 15년에 청약저축 통장도 거의 15년 넣었네요.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서울시 안에서 분양하는 공공분양주택은 수가 적고 그나마도 방 2개 화장실 1개 소형 주택이 절반인데요. 청년·신혼부부용이라는 행복주택은 중형주택으로 공급하는데 역차별 아닌가요? 임대주택에 살기 싫으면 평생 살던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가라는 소리인가요?"
주택청약저축 통장에 가입한지 14년이 넘은 한 서울지역 거주자의 이야기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급하는 공공분양주택 청약을 노리는 청약자 가운데 서울지역 예비 청약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 SH공사가 공급하는 공공분양주택이 크게 줄어서다.
공공분양주택에 청약하기 위해 15년 이상 주택청약저축 통장에 가입했거나 평생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던 청약자들이 집단 '멘붕'에 빠진 것. 더욱이 서울시의 가용 택지가 크게 줄어든데다 서울시 주택정책 방향이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기조로 하고 있는 만큼 공공분양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서울 거주자에게 공공분양 청약통장은 무의미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실정이다.
31일 서울시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내에 공급될 공공분양주택은 올해 작년보다 늘겠지만 오랫동안 공공분양 청약을 기다려온 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따르면 올해 공급이 예정된 서울시내 공공분양 주택은 3개 단지 1891가구다. 다음달 주택시장의 관심이 쏠려 있는 강서구 마곡지구 9단지 962가구가 공급된다. 올해 서울시 공공분양주택 공급계획의 절반에 이르는 수준이다. 5월엔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8단지와 14단지에서도 각각 518, 411가구가 나올 예정이다. 아직 일정이 미정됐지만 하반기에 위례신도시에서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
SH공사의 올해 공공분양물량은 예년에 비하면 많은 수준이다. 지난해엔 고덕강일지구 4단지에서만 642가구가 분양됐다.
[서울=뉴스핌] 서울주택도시공사 아파트 모습 2020.01.31 donglee@newspim.com |
하지만 이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공공분양주택 예비 청약자 수요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9년 연말 기준 공공분양주택에 청약할 수 있는 주택청약저축 가입자 가운데 서울시 거주자는 20만6400여명이다.
지난 2015년 9월부터 가입이 중단된 주택청약저축의 전국 가입자가 48만1400여명인 것을 감안할 때 청약저축 가입자 40% 이상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것이다. 이는 LH가 활발하게 분양주택을 공급하는 경기·인천지역의 청약저축가입자 14만8000여명에 비해서도 40% 이상 많은 수치다.
이미 신규 가입이 중단된지 4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타지역 거주자에 비해 청약저축통장 가입자가 많다는 것은 서울 거주자들은 공공분양 청약 기회가 적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2009년부터 출시된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가운데 공공분양에 청약할 수 있는 무주택자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더 크게 늘어난다. 서울지역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가운데 1순위자는 300만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서울시 공공분양주택은 강남 재건축 못지 않은 청약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서울시가 공급하는 공공분양 주택은 '양'도 적지만 '질'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2월에 공급될 마곡9지구는 전용면적 84㎡(옛 32~34평형)규모 주택529가구 공급되며 방 3개 화장실 2개가 들어가는 실수요형 주택인 전용 59㎡(옛 24~25평형) 주택도 433가구가 공급된다. 이 때문에 마곡9단지는 벌써부터 '로또 분양'으로 불리고 있다.
반면 고덕강일지구 8·14단지에 공급될 전체 929 가구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448가구는 옛 20평형에 해당하는 전용면적 49㎡ 물량이다. 방 2개 화장실 1개인 평면으로 통상적인 4인가구가 거주하기엔 불편한 주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4개 단지에서 2400여 가구의 공공분양주택이 공급된 경기도에서는 대부분의 공급물량이 전용 74㎡(옛 29~30평형)인 점을 감안할 때 서울시내 공공분양물량은 말 그대로 20~30대 청년세대가 살기에 적합한 행복주택 수준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시의 공공분양주택은 갈수록 그 수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신규 택지가 거의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지정된 공공택지는 대부분 이명박 정부 시절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지정된 곳이다. 실제 개발이 추진되는 곳은 강서 마곡지구, 구로 항동지구, 강동 고덕강일지구 세 곳 뿐이다. 이들 공공주택지구 사업이 완료돼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서울시에서는 앞으로 공공분양주택이 극소수만 나올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 방향이 공공임대주택 공급 우선이라는 점도 공공분양 주택 감소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최근 시장 일각에서 제기된 서울시 주택공급 부족 논리에 맞서 공공주택 40만 가구를 공급키로 했다. 하지만 이 40만 가구의 절대다수는 임대주택이다. 결국 공공분양 예비 청약자는 무주택 기간만 늘어나게 된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 주택공급 방향은 주택의 공공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중심으로 될 것"이라며 "분양 주택은 굳이 줄이지는 않겠지만 전략적으로 늘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민들은 경기, 인천지역에서 나오는 공공분양에 청약하기도 쉽지 않다. 주소지가 서울인 만큼 경기도 시·군 거주자에게 절반이 우선 돌아가고 30%는 경기도 거주자에게 배정된다. 그리고 나머지 20%를 놓고 경기, 인천 거주자와 경쟁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내 공공분양은 올해를 피크로 주저 앉게 될 것"이라며 "서울 거주자는 수도권 공급물량에 1순위 자격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분양 예비청약자는 내집마련 전략을 변경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사업을 사실상 막아 민간주택 공급을 줄이는데 이어 공공분양까지 줄이고 있는 만큼 서울엔 타지역에 올라온 청년 세입자만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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