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파오차이(泡菜)는 염장 발효 채소라는 뜻으로 채소와 과일을 주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다. 중문으로는 파오차이(泡菜)라고 하고 영어로는 피클이라고 부른다. 한국 파오차이(김치)는 한국 음식 문화를 대표하며 지방 제거에 효능이 있다. 한국 파오차이는 30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중국에서 발원했다'. 한국 김치에 대한 대한 중국 포탈 바이두(百度)의 설명이다. 바이두는 중국이 파오차이 종주국임을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중국 쓰촨성 푸링(涪陵) 자차이(榨菜)는 프랑스 피클, 독일 피클과 함께 세계 3대 파오차이로 일컬어진다'. 14억 중국인들의 백과 사전인 바이두는 계속해서 이렇게 설명을 이어간다. 3대 파오차이에 종주국 한국의 김치가 싹 빠졌다. 바이두 사전은 또 중국이 세계 파오차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게 됐다며 2020년 11월 24일 중국 주도로 쓰촨(四川)성 메이산(眉山)시 동포(東坡)구 파오차이 산업이 국제표준으로 제정된 내용도 아주 신속하게 등재했다.
중국 매체들은 중국의 파오차이 국제표준 제정에 대해 한국 농림수산식품부 당국이 한국의 김치(Kimchi)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하면서 이와 관련한 소식에 11월 30일 1억명의 네티즌들이 관심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국제표준 관련 홈페이지도 한국 파오차이(김치)는 중국 제정 표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그냥 넉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 설명및 대응과는 달리 중국이 이번에 제정한 중국 파오차이의 국제 표준은 향후 한국이 선점한 '김치(Kimchi)'의 세계적 위상에 적지않은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이 ISO에 제출해 2017년 부터 추진해온 국제 표준안에 파오차이는 '염장 발효 채소(과일)'라고 돼 있다.
중국에서 파오차이의 정의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중국 파오차이는 장아찌와 비슷한 자차이를 비롯, 물 김치와 과일 김치, 배추 김치, 홍당무 김치 등 소금물 등에 절이거나 특정 액체에 담가서 만드는 모든 김치를 망라하는 개념이다. 우리의 백김치나 총각김치 동치미 김치도 중국식으로 하면 모두 파오차이에 속한다.
중국 농민일보에 따르면 중국 3분의 2에 달하는 파오차이가 쓰촨성에서 생산된다. 예로부터 쓰촨인 집에는 만물을 모두 담글(발효) 수 있는 라오염수(老鹽水) 단지가 있었다고 한다. 염수에 하루이틀 담가서 먹는 시자오(洗澡)파오차이 등 파이오차이 종류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자차이도 파오차이의 한 종류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전후로 쓰촨성 메이산 둥포구를 중심으로 파오차이 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해왔다. 중국내에서 메이산은 전국 최대 파오차이 밀집 생산 기지로 유명하다. 2020년 1월 ~10월 메이산 둥포구 파오차이 산업 시장규모(매출 수입)는 160억 위안으로 우리 돈으로 거의 3조원에 육박했다.
중국 매체들은 쓰촨성 메이산시가 파오차이를 ISO 식품 표준으로 제정함에 따라 중국 파오차이의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파오차이 최대 생산지인 쓰촨성 둥포 파오차이의 국제 지명도가 올라갈 것으로 크게 기대하는 눈치다.
이번 쓰촨 파오차이 국제표준에는 중국 주도로 터어키 세르비아 인도 이란 등의 국가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파오차이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표준 제정은 앞으로 중국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이 글로벌 파오차이 시장의 새로운 스탠더드가 될 것임을 의미하는 일대 쾌거라고 강조한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90% 이상의 김치를 중국에서 들여다 소비한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김치는 매년 28만 톤을 넘는다. 올해는 태풍 영향으로 배추와 고추등 주재료 작황이 안좋아 코로나19 상황인데도 중국산 의존도가 더 심화됐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대중국 '파오차이' 수입 의존도는 높아질 것이고 수입지역도 산둥성 칭다오에서 쓰촨성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중국 쓰촨성 메이산 파오차이 ISO 국제표준이 우리의 김치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쓰촨성 메이산 파오차이 ISO 국제표준은 유감스럽게도 쓰촨성만 아니라 산둥성과 중국 동북 등 중국 국내 모든 파오차이(김치)에 적용되는 제도다. 한국이 엄청나게 수입 소비하는 산둥성 칭다오산 김치는 말할 나위도 없다.
단순히 그럴 개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일 중국 매체는 중국 업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한국 소비김치의 99%가 중국 수입산이라는 통계가 있다"며 "한국이 중국 쓰촨성 메이산 파오차이 신 국제표준에 불만이 있어도, 앞으로 한국인들이 먹는 '김치'는 영락없이 중국 ISO 신표준하에서 생산된 파오차이일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2001년 국제식품 규격위원회에 김치(Kimchi)를 국제 표준으로 정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 김치 수입이 급증하고 수출량이 미미해지면서 국내 생산이 급감하고 있다. 음식점엔 예외 없이 중국 수입산 '파오차이 김치' 일색이고, 일반 가정에서도 점점 김치 담그는 집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가 일찌기 제정한 국제 표준이 점차 빛이 바래고 유명무실해 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가 국제표준을 정한 20년 전에 비해 상황이 많이 변했다. 중국의 파오차이 표준제정은 우리 김치에 대한 도전이다. 원칙론만 종알대며 뒷짐짖고 있을 일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도 달라진 환경에 대응해 김치(Kimchi) 종주국 위상을 지키는 노력에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