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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피해자다움' 강요하는 성폭력 통념...이제 국회가 나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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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성폭력 당했다는 사람이 책도 쓰고, 멀쩡히 인터뷰도 하고."

"성폭력 당하고 계속 함께 일한 건 뭘까? 이상하다 성폭력 당하면 바로 신고해야지 이제야 이러는 건 뭐냐고."

"꽃뱀인 주제에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살아라."

이정화 사회문화부 기자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김지은 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손배소)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안 전 지사의 범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며 이들에게 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오는 11일 첫 재판이 예정돼 있다. 안 전 지사는 지위를 이용해 김씨를 성폭력하고 추행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는 응당 그래야만 하는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다. 김씨는 성폭력 피해 후에도 안 전 지사와 계속 함께 일하고, 책을 쓰고, 인터뷰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손배소)을 내는 등 피해 사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이상한 사람', '꽃뱀', '양심을 갖고 살지 않은 사람' 등 원색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런 원색적인 비난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피해자다움'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다움은 성폭력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통념에 기반하고 있다. 성폭력 발생 당시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하면 그 상황을 충분히 피할 수 있고, 성폭력 피해자라면 지체 없이 신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 후 겪는 충격과 공포감 등은 철저히 무시된다. 여성가족부가 2019년 진행한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당시 대응하지 못한 여성 응답자 44%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성폭력 당시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현행법은 이런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수반돼야 한다. 대법원 판례는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으로 항거불능 상태이거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정도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의 입증 부담은 고스란히 피해자 몫이 된다.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8년 강간죄에 대한 한국의 법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통념을 깨기 위한 법안이 '비동의 강간죄'를 규정한 형법 개정안이다. 21대 국회에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다. 명백한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상대방 의사에 반하거나 명백한 동의가 없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혔는지를 따지는 대신 가해자가 상대로부터 동의를 받았는지를 따지자는 것이다.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에서 한 발짝 나아간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rule)'이다. 이제는 국회가 나설 차례다. 

cle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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