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은 3D 프린팅 산업에 뒷북 대책 제시
종합대책 마련에 새학기 조달기준 개정 못해
안전 사각지대 빠트린 미봉책 대책 지적 제기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10년이 훌쩍 지난 3D 산업의 유해물질 차단책을 정부가 뒤늦게 꺼내들었다.
이미 산업이나 교육 현장에서는 보편화된 3D 프린터로 인해 피해 사례가 이어지는데도 여전히 인과관계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반쪽짜리 안전 강화 대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 3D 프린팅 대중화 10년 지난 뒤에서야 안전 강화 대책 제시
2010년께 미국 HP는 3D 프린터 전문업체인 스트라시스와 함께 3D 프린터 장비를 내놨다. 사무실에서 쓸 수 있는 데스크톱 크기로 1만5000달러 수준의 가격으로 보급형 모델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
이후 3D 프린터는 산업계의 고품질 기기부터 가정에서의 개인용 기기까지 확대됐다. 조립형 3D 프린터의 경우, 수심만원대면 가정에서도 구입해 이용이 가능하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산업기술 R&D 대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참가업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21.11.17 mironj19@newspim.com |
문제는 3D 프린팅의 소재(필라멘트)에서 나타났다. 그동안 3D프린팅 소재에 고열이 가해지는 3D프린팅 작업 시 미세입자와 휘발성유기화합물(VOC) 방출이 다수 국내외 문헌에서 언급됐다. 13개 논문에서 3D프린팅 작업 중 발생한다고 발표한 VOC를 모두 합하면 스티렌(ABS), 락티드(PLA), 카프로락탐(나일론) 등 총 90여 종에 달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스티렌은 눈, 상기도에 대한 급성 자극 등을 일으키고 만성적인 신경계·호흡기계·간담도계·생식계 등의 반응을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발암성 물질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교육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조달청 등과 함께 '3D 프린팅 안전 강화대책'을 8일 발표했다.
강화대책에는 ▲3D프린팅 안전이용 지침 제공 및 지원체계 구축 ▲3D프린팅 안전이용 현장 착근 강화 ▲3D프린팅 소재·장비 안전 강화 ▲3D프린팅 안전제도 개선 및 홍보 등의 방안이 담겼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사후약방문'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3D 프린터로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 7명이 육종암 등 각종 질병에 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제야 정부부처가 대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3D 프린팅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상징적인 교육이 돼 있다보니 교사는 물론 학생들 역시 유해 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플라스틱 계통의 물질을 녹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화학적 방출물이 생기는 것은 상식인데도 이에 대한 유해성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 안전 대책 사각지대 여전해…미봉책 대책 논란 지적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3D 프린팅 안정 강화대책 역시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번 대책을 추진하더라도 기존에 유해성 우려가 높은 소재의 유통을 차단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과기부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유통이 되고 있는 필라멘트 등 소재에 대해서 유해성 여부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이를 제재할 수는 없다"며 "그래서 안전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안전 가이드를 제공하고 환경 개선 지원 등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교육기관 등에 납품되는 소재에 대해 조달 기준을 강화할 계획이나 이마저도 현시점에서 2~3개월이나 지나야 개정이 가능하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인덕대학교를 방문해 학교 내 3D프린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2019.02.15 pangbin@newspim.com |
한 학부모는 "교육 프로그램에 다 적용이 되는데, 새학기가 시작됐으니 이미 관련 유해성 높은 소재는 교육현장에 납품이 된 상태 아니겠냐"며 "당장 유해성 있는 소재가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부터 취해야지 종합 대책을 만드느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또 공공기관에 납품되는 소재에 대한 조달 기준을 강화하더라도 기준에 맞지 않는 소재가 민간에 그대로 유통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최근에는 가정에서의 3D 프린팅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유해성 있는 소재가 저렴한 가격에 개인용으로 상당수 유통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디자인을 비롯해 스타트업 업계 등에서도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낸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제품에 대한 장단점 등을 알고 고객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목업(mock-up·실물모형)'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하고 있다"면서 "수개월동안 한 직원에게 전담시키고 있는데, 당장 건강부터 체크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인사혁신처가 일부 교사에 대한 유해 여부에 대한 역학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지만 소재 전반에 대한 유해성 여부를 파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들린다.
이번 대책 역시 유해물질에 대한 위험성은 인지하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어 직접 제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화학적인 유해물질이 방출되는 데도 국민이 알아서 안전하게 다루면 된다는 식의 탁상행정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번 대책을 통해 기존 안전 대책 등을 강화하고 향후 유해성 여부 등에 대한 추가적인 사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