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난방 도구 뿐 아니라 인화물질도 반입
2013년 농성천막 화재로 문화재 소실 우려도
"시민·시위 참가자 안전 위해 천막 규제 논의해야"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도심 중심가에 위치한 대기업 본사 앞에서는 확성기를 이용한 고성의 시위와 보행자의 이동을 방해하는 현수막 뿐 아니라 시위용 천막이 장기 고정 시설물처럼 설치돼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막은 시위 참가자들이 천막 안에서 거주하며 장기·철야 시위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면서 민원이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집회·시위와 상관없는 취사와 난방 도구는 물론 인화물질 같은 위험물질이 반입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쿠팡 본사 앞 모습 [사진 제공=제보자]2023.04.20 dedanhi@newspim.com |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앞 보도에 천막을 설치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의 사례도 유사하다. A씨가 설치한 천막 안에는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 등이 버젓이 놓여 있다.
인화물질로 인해 불법 천막은 화재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시위 참가자들이 천막 내에 난로를 피우는 경우가 많아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천막의 소재가 대부분 화재에 매우 취약할 뿐만 아니라 소화기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불이 날 경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2007년부터 7년여 년간 복직투쟁을 벌여 온 B기업 노동자들은 서울시 중구 B기업 본사 앞에서 24시간 천막농성을 벌이면서 압력밥솥과 고무 파이프를 이용해 임의로 난방시설을 만들기도 했으며 지난 2012년 한 증권사 노조는 두꺼운 비닐을 덧댄 천막 안에서 등유난로를 피우면서 겨울철 농성을 이어 갔다.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쿠팡 본사 앞 모습 [사진 제공=제보자] 2023.04.20 dedanhi@newspim.com |
더욱이 지난 2013년 C기업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 앞에 설치한 농성 천막은 방화로 화재가 나 천막 한 동이 전소되는 것은 물론 덕수궁 담장 서까래까지 그을렸다. 인명 손실의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국가 문화재까지 소실될 수 있었던 것이다.
수 년 동안 시위천막이 설치됐던 국내 대기업 사옥 인근에 거주 중인 김모 씨는 "한겨울 심야에 천막 근처를 지나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도로나 인도를 막고 설치된 시위 천막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보행을 방해하고 교통사고 가능성도 높인다.
현대차그룹 사옥 앞 보도에서 천막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는 불법 천막을 9개월째 철거하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주는 것은 물론 인근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시야도 가려 교통사고 위험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쿠팡 본사 앞 모습 [사진 제공=제보자] 2023.04.20 dedanhi@newspim.com |
문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시위용 천막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설치를 제한하는 법령이 없다는 것이다.
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보도나 차도 등에 설치된 불법천막의 경우 도로법에 의해 지자체의 행정 조치 또는 민·형사소송 등을 통해 제한할 수 있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다. 지자체는 불법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집회·시위자들과 충돌을 우려해 먼저 자진 철거 요청을 하지만, 이에 응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현행 집시법상 천막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소음 등과 달리 집시법 개정 추진 시 천막은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확성기 사용(소음)'에 대해서는 집시법상 이를 제한하는 조항을 갖추고 있고, 소음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취지의 입법안이 21대 국회에만 총 9개가 발의돼 있는 반면 시위 천막을 규제하는 입법안은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집시법 차원에서 천막 설치를 제한하는 명확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천막은 현수막이나 확성기와 달리 집회나 시위의 목적과 의도를 표현하는 데 전혀 관련이 없는 시설물인데다, 불법 시위의 핵심 시설물이 되어 가고 있는 만큼 관련 법령을 통해 시민들뿐 아니라 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천막 설치에 대해 구체적인 제한 규정을 마련할 시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dedanh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