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 21XX년 8월 어느 날.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동료들과 소주한잔했다. 퇴근길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축 늘어진 어깨의 회사원 뿐만 아니라 학원에 오가는 학생, 한푼이라도 벌려는 노인 등 저 마다 지친 표정이 가득하다.
한 남자가 한켠에서 뒷짐지고 걸어오고 있다. 허리춤의 금속성 물체가 조명에 반사됐다. 흉기다. 사람들을 훑어보며 다가오는 그의 눈동자에 동공이 풀린 듯 했다. 그는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내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깜짝 놀라 머리가 가려웠다. 나도 모르게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전기충격기와 삼단봉을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과 소매 끝에 반짝거리는 칼끝이 선명하게 나를 향하는데...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을 시작으로 '서현역 백화점 칼부림', '관악구 등산로 성폭행' 등 불특정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 바, 묻지마 범죄자들이 속속 검찰로 송치되거나 재판에 넘겨지고 있다.
사회부 김기락 차장 |
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지만, 범죄 혐의가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무기징역 등 중형 선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특히 정부가 흉악범에 대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만큼, 남은 인생을 감방에서 보내게 된다.
이 자들은 "우발적 범행이었다", "살인 고의가 없었다" 등 주장하고 있으나 이미 피해자들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 같은 범죄는 불명확한 범행동기와 불특정한 피해자 등을 이유로 경찰과 검찰 수사기관에서 '이상동기 범죄(異常動機犯罪)'로 본다.
뒤집어 보면,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지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유 없이(물론 이유가 있어서도 범죄는 안 되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범행에 나설 수 있다는 것으로 모방 및 유사 범죄로 늘어날 우려가 매우 크다.
단적으로, 칼부림 사건 이후 '살인게시글'이 서울·경기 등 전국 곳곳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군가 보라고 올린 글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신고로 이어졌다. 10대 청소년들의 철딱서니 없는 장난이더라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
온라인에 글 한번 잘못 올렸다가 형사 처벌은 물론, 변호사 선임 등 법률 비용, 국가에 대한 민사적 손해배상 등을 각오해야 한다. 학교 교육에 앞서 평소 가정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정부의 대책이 앞으로 칼부림 등 흉악 범죄를 충분히 억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상동기 범죄는 말 그대로 동기나 정신 상태 등이 정상이 아니라는 뜻인데, '예방' 대책은 너무 정상적이기만 한 것 같아서다.
마치 총칼 들고 덤비는 데 "너 그러면 혼나"라고 해석된다. 범죄를 예방하든, 범죄자를 소탕하든 정부가 책임지고 해야할 일이다. 각종 사고 및 재해 때마다 윤석열 정부의 메시지는 그럴 듯 하다. 차라리 노태우 정권 때 '범죄와의 전쟁'이 떠오를 만큼,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는 게 나을 수 있다.
21XX년 퇴근길 칼부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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