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이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열었다. 강동원, 박정민 주연의 사극 액션 영화로, 대중적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복잡한 양상의 사회 갈등, 인물간의 관계를 담으면서 OTT와 극장을 아우르는 K무비의 부흥을 기대케한다.
2일 제 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 란'이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이날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이 영화는 조선 선조 시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지극히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갈등이 극심했던 상황들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노비 역할의 강동원과 우정과 애증을 오가는 사이인 종려 역의 박정민이 영화의 양 끝에서 다른 색깔을 채워나간다.
영화 '전, 란'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
'전, 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돼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종려는 천영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우정을 나누지만, 비극적인 전개와 함께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진다. 급기야 천영을 오해한 종려는 그를 철천지 원수로 여긴다.
강동원은 천영 역을 맡아 거친 비주얼과 자유로운 몸 연기로 날 것의 감정을 표현한다. 부모 중 한 명만 노비여도 자식도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에 따라 양민에서 노비가 된 그는 반항심이라고 할 것도 없이, 굳건한 자아를 타고났다. 이미 수 차례 다양한 액션을 선보여온 강동원은 '전, 란'에서 '청의검신'으로 불리며 고난도의 검술 액션을 구사한다. 설움과 분노, 무력함을 넘어 잘못된 체제를 바꾸어보겠다 마음 먹는 그의 눈빛은 전에 본 적이 없이 낯설고 신선하다.
영화 '전, 란'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
종려 역의 박정민은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감정을 나눌 줄 아는, 천성이 선한 양반으로 태어났다. 그를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천영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그 덕분에 무예 실력도 다지게 되면서 특별한 우정을 쌓는다. '반상의 도리'대로 멀어진 천영이 집안을 몰락시켰다고 오해하게 되면서, 그에게도 싸울 이유가 생겨난다. 오직 천영을 비롯한 하층 계급을 몰살하겠다는 일념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의 위태로운 내면은 박정민의 복잡한 눈빛과 표정 연기로 생생히 구현된다.
'전, 란'은 꽤나 직설적으로 사회적인 신분과 계급갈등에 대한 주제를 전면에 펼쳐 놓는다. 그런 점에서 전 세계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기생충'과 주제의식이 닮았다. 선조가 피난길에 올라 분노한 백성들이 달려들었을 때, 자국 백성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무관들과 왜적에 맞서 피 흘리며 싸우는 의병대의 모습이 교차로 지나갈 때, 관객들은 절로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된다.
영화 '전, 란'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
왜장 겐신 역의 정성일, 범동을 연기한 김신록의 활약도 놀랍다. 겐신은 일본의 사무라이로서 천영의 검술을 단번에 알아본다. 지략과 검술을 모두 갖추었으나 한없이 잔혹한 면도 갖췄다. 마지막 신에서 그가 일본으로 가져가려던 전리품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조용히 탄식이 흘러나온다. 반역으로 몰렸던 '대동' 세상을 넘어 '범동'을 꿈꾸게 하는 범동의 서사는 겐신의 반대편에서 새롭게 깃들 희망을 말하는 듯하다.
영화 '전, 란'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
영화 '전, 란'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
어쨌든 '전, 란'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이 영화가 동시대에 왜 의미있는지, 질문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작품을 보고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가 떠오른다거나, 개와는 친구가 돼도 신분이 낮은 계층은 사람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윗 분들의 논리는 자연스럽다. 극중 김자령 장군의 결말이나 천영이 마음을 다시 먹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들은 누가봐도 잔혹하기 그지없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돌아온 채로 결말은 지었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인간과 계급의 속성을 시원하게 폭로하는 듯하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