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협회 '임장 기본 보수제' 도입 논란
공부 목적으로 집만 보는 '임장 크루' 막는단 목적이지만
대다수 소비자 부정적 여론 커… 법 개정도 필요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협회')가 매수자에게 집을 보는 비용을 받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실수요자뿐 아니라 공인중개사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리며 논란이 커지는 모습이다.
![]() |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28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임장비, 즉 매수자에게 집 보는 비용을 받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5.02.13 leemario@newspim.com |
◆"임장 크루 철퇴" 임장비 도입하겠단 협회… 현실화 가능성은?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협회는 공인중개사가 고객에 매물을 소개하고 임장비를 받는 것을 골자로 한 '임장 기본 보수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임장 기본 보수제란 중개업소에 매물을 보러 온 개인에게 일정 금액의 임장비를 받고, 나중에 실제로 거래하게 되면 이 비용을 중개보수에서 차감하는 방식이다. 최근 논란이 된 '임장 크루'의 무분별한 중개업소 방문에 따른 인력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다.
임장 크루는 부동산 커뮤니티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부동산 투자 학원 등을 통해 모인 이들을 뜻한다. 다수로 움직이며 여러 중개사무소에 매물을 문의하고, 실거래 아닌 정보 수집이나 학습 목적으로 현장 확인에도 적극적이다.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선 하루에도 몇 팀씩 방문하는 임장 크루에 시간과 노동력이 소모된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예전엔 임장 크루인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었는데, 요즘엔 사전에 스터디를 많이 하고 오는 편이라 정말 집을 살 의향이 있는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며 "하루종일 전화를 받고 집 보여주러 뛰어다녀도 실제 거래가 0건인 날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사이에선 임장 크루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업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1분기(1∼3월) 개업한 공인중개사는 2720명으로, 전년 동기(3032명) 대비 10.3% 줄었다.
지난 1월 개업 공인중개사 수(871명)는 월 기준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5년 이래로 가장 적었다. 2월(925명)과 3월(924명)에도 1000명 선을 넘지 못했다. 이 또한 통계 집계 이후 최초다. 같은 기간 폐업하거나 휴업한 공인중개사는 개업 수보다 455명 많은 3175명을 기록했다.
협회가 임장 크루에 자제를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임장 클래스 운영 업체 11곳을 대상으로 사무소 방문 주의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협회 측은 "임장 크루들이 정보를 얻거나 경험을 쌓기 위해 임장을 다니면서 공인중개사와 임대인, 임차인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며 "이는 공인중개사의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이니 기본적인 배려와 에티켓을 갖춰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자 김종호 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은 지난해 선거 공약으로 임장 기본 보수제 도입을 내세웠다. 김 회장은 "공인중개사가 임장 과정에서 들이는 노력과 서비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상담해도 집만 보고 떠나면 끝인 구조"라고 말했다.
협회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임장부터 계약 성사까지 평균 안내 횟수는 18.07회로, 단독주택(21.33) 아파트(19.36회) 주거용 오피스텔(14.89회) 순이다.
◆"고객 불편 줄어들 것" vs "직거래 늘어날까 걱정"
임장비 도입에 공인중개사 사이에서도 반응이 반반으로 갈렸다.
서초구 한 공인중개사는 "그동안 임장하러 오는 이들한테 예약금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며 "임장비를 도입하면 적어도 집을 보여주고 나서 허탈함은 안 느껴도 되지 않냐"고 말했다.
반대로 도봉구 모 공인중개사는 "지금도 시장이 안 좋으면 가게에 파리가 날리는 마당에 굳이 임장비까지 받아서 고객과의 거리감을 늘릴 필요가 있냐"며 "직거래만 더 늘어나 밥그릇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민 여론은 부정적이다. 부동산 커뮤니티 이용자 다수는 임장비 도입 시 오프라인 중개업소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누리꾼 A씨는 "VR(가상 현실) 임장도 가능한 세상인데 이를 통해 집을 보고 전자계약을 하거나 직거래 플랫폼을 활용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또 다른 커뮤니티 이용자 B씨는 "일부 '민폐족' 임장 크루 때문에 왜 선의의 소비자가 피해를 입어야 하냐"며 "임장비를 받는다면 집주인도 별도 비용을 청구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개념이 제시된 바 있으나 비판 여론이 강하게 일면서 현실화되지 못했다. 2021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토교통부에 매매·전세 계약을 맺지 못한 경우라도 실비 보상 한도 안에서 수고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주택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 방안'을 권고했다. 그러나 실제로 활용되지 못해 거의 사장됐다.
해외 국가에서도 임장비를 따로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은 한국처럼 중개보수의 법적 상한이 정해져 있고 임장비용을 별도로 청구하지 않는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NAR(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 규정이 개정되면서 바이어가 브로커와 '전속매수의뢰계약'(Exclusive Buyer's Agreement)을 체결해야 주택을 볼 수 있다. 부동산 거래를 원하는 고객이 한 명의 공인중개사하고만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는 임장비와는 다른 개념이다.
무엇보다 임장비를 도입하려면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 공인중개사법상 거래를 위한 안내, 설명, 방문 동행 등의 행위는 무상으로 해야 하며 중개보수는 계약이 완료된 이후 청구할 수 있어서다. 협회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실거래 의사가 없는 사람의 잦은 방문은 공인중개사의 불필요한 피로도를 가중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보수제 도입은 공인중개사법 등 관련 법·제도가 개정이 필요하므로 정부와 협의하여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실계약 의사 없는 임장 수요자로 인한 공인중개사의 불편을 줄여줘야 하는 건 맞지만 실현되면 강한 반발에 부딪칠 수 있다"며 "결국 온라인을 통한 정보 취득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