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 장기물 발행 축소 나섰지만 '베어 스티프닝' 장기화 우려
인플레 재점화 조짐에 금리인하 기대도 흔들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의 국채시장이 최근 초장기물을 중심으로 비명을 질러대자, 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외신에 소개된 대책들은 근원 처방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에 불과해 국채시장의 뇌관을 제거하기에는, 작금의 불안한 국채시장 흐름을 궁극적으로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악화일로에 놓인 재정적자 때문에 글로벌 채권 시장 내 '장기물 매도(베어 스티프닝)'와 그에 따른 시장 발작은 제법 오래 반복될 위험, 자칫 고질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 국채 금리 연쇄 발작에 각국 대응 분주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 법안 추진이 재정 악화 우려를 키우면서 지난주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5.15%까지 상승해 2007년 이후 최고치에 근접했고, 10년 만기 금리는 4.6%를 돌파하며 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국채 금리 급등 현상은 주요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는데 일본 4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주 3.689%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30년물도 3.2%로 최고치를 찍었다. 10년물 금리도 지난주 1.57%에 도달했다.
독일 3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주 12bp 이상 올랐고, 10년물 금리도 6bp 넘게 상승했다. 영국 30년물 국채(길트) 수익률은 5.48%까지 상승하며,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이번주 들어 주요국(특히 일본과 영국)이 국채 장기 및 초장기물 금리 안정을 위해 외견상 공조를 취하는 듯한 모습이나 채권 회피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영국 정부는 장기 국채 발행에 대한 투자 수요가 약화되자, 2025~26 회계연도 채권 발행 계획에서 단기물 중심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는 장기 금리 상승에 따른 조달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일본 재무성도 2025 회계연도 만기별 국채 발행 규모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최근 금리가 치솟은 40년물과 30년물 등 초장기물 발행 규모를 줄이는 대신 만기가 짧은 국채 발행을 늘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금융 규제완화를 통해 월가 은행들의 국채매입 여력을 늘려주는 방안이 준비중이다. 지난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은행들의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Supplementary Leverage Ratio)을 인하하는 방안을 시사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이론적으로는 은행들이 미 국채를 더 많이 보유하거나 대출 여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베선트 장관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SLR 조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연준, 통화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3개 금융 규제 기관 간 조율이 상당히 진전되었고, 올여름 중으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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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달러화.[사진=로이터 뉴스핌] |
◆ '셀 본드' 반전 어려운 이유는
시장 전문가들은 채권 수익률을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들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란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채권 시장 발작의 근본 원인인 재정적자의 개선이 요원하다. 여기에 공급망 불안으로 인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법안이 향후 10년간 4조 달러의 추가 부채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장기 국채 금리에 대한 지속적인 상승 압력을 가할 것이란 관측이다.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릭 위노그라드는 지난주 하원을 통과해 상원서 심의 중인 트럼프의 감세 법안에 "재정 절제의 흔적은 전혀 없다"며 "오히려 추가적인 재정 악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씨티그룹의 애널리스트 스튜어트 카이저도 지난 월요일 고객 메모에서 "불행히도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은 GDP 대비 6%를 웃도는 미 재정적자를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높고, 일본과 영국의 채권시장 움직임도 이러한 우려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FWD본즈의 크리스 럽키는 "명목 GDP보다 재정적자가 더 빠르게 증가할 경우, 10년물 금리가 6%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채권 수익률이 진정으로 영향을 받는 시점은 실제로 시장에 부채가 판매될 때다"라고 럽키는 말했다. 이어 그는 "워싱턴의 정치 혼란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계속 사들일 것인지, 아니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것인지가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블리클리 어드바이저리 그룹의 최고투자책임자(CIO) 피터 부크바르는 화요일 메모에서 은행들이 반드시 국채 보유를 확대하거나 활발하게 거래에 나설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베선트 장관이 제시한 SLR 인하 방안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은행들이 설령 국채를 매입하려 해도,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SVB는 장기물 국채에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금리 상승에 직격탄을 맞고 파산했다. 이어 "향후 은행들이 국채 보유를 늘리더라도 장기물이 아닌 단기물(T-bills)을 선호할 것"이라며 "따라서 장기 수익률을 낮추는 데는 다른 수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후 파이낸스는 보통 불확실성이 커질 때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국채로 매수세가 유입되기 마련이지만, 최근의 국채 매도는 전통적인 흐름과 정반대 양상이라며 전 세계 시장에서 '미국 자산 매도(sell America)' 심리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장기와 초장기 국채 금리 향방의 가시성을 떨어뜨리면서 올해 안에 연방준비제도(Fed)의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점치는 투자자들의 기대에도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위노그라드는 "보통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사이클에서 장기 금리도 하락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러하기가 어렵다"며 이는 연준이 통화정책 완화를 고려하는 데 있어 주요한 도전 과제"라고 분석했다. 연준이 성장을 돌보기 위해 정책금리를 낮추더라도, 장기 금리가 오히려 높게 유지되거나 더 상승할 경우(수익률 곡선 스티프닝)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미국 내 가계의 모기지 이자 비용과 기업들의 조달 비용 대부분이 장기물 금리에 연동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정 건전성 우려가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 중인 만큼, 글로벌 채권 전반에 걸친 투자심리 위축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BNP 파리바는 27일 보고서에서 "장기와 초장기 국채 가격의 최근 낙폭(금리 상승폭) 심화로 이를 노린 반발매수세가 일시 유입될 수 있지만 지속적인 매수를 논하기엔 관세정책과 재정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짙은 편"이라고 판단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