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결선 투표 끝에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제치고 승리했다.
일본 정치 구조상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다카이치는 오는 15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총리 지명 선거를 거쳐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로 오를 것이 유력하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는 단순히 지도부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이자, 자민당 내부 보수파의 부상과 일본 정치의 향후 노선을 가늠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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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비세습 정치인으로 집권당 총재까지
다카이치는 1961년 나라(奈良)현 출신으로, 고베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정치인 양성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에 들어갔다. 이후 방송국 진행자와 정책 비서 활동을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해에 국회에 입성했다.
일본 정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습 정치인과 달리, 평범한 맞벌이 가정 출신으로 정치 가문이라는 배경 없이 독자적으로 기반을 닦아 온 인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1993년 중의원 당선 이후 10선 의원으로 활동하며, 자민당 내 보수 진영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키웠다.
다카이치는 아베 전 총리 시절 각료를 맡으며 중앙 정치 무대에서 입지를 넓혔다. 특히 2022년 신설된 '경제안보상'을 역임하면서 반도체·핵심 기술 보호, 공급망 관리 등 전략 산업 육성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경제와 안보는 하나"라는 기조를 내세우며, 기술과 산업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정책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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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 [사진=로이터 |
◆ 강한 보수 색채 '여자 아베' 별명
다카이치는 일관되게 보수적 정치 노선을 유지해 왔다. 위안부 문제, 역사 교과서 서술 등 민감한 역사 인식에서 수정주의적 입장을 보였고, 가족 제도나 성(姓) 제도 개혁, 동성혼 인정 등 사회 제도 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언론에서는 그를 '여자 아베'라 부른다. 아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자위대 강화, 헌법 개정 필요성, 전통적 가치 수호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다카이치는 스스로를 아베의 후계자로 규정짓는 시각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며, "자신의 길을 간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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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다카이치, 일본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
다카이치의 총재 당선은 일본 정치에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던진다. 첫째는 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다. 보수적인 일본 정치 문화 속에서 여성이 최고 권력에 오르는 것은 정치적 성 평등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둘째는 실질적 통치 과제다. 자민당은 최근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상실해 의회 운영이 순탄치 않다. 당내 계파 간 조율과 국회 내 협치, 그리고 침체된 경제와 복잡한 외교 환경이 다카이치 내각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외교 균형,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 같은 구조적 문제 해결은 다카이치의 리더십을 시험할 과제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등장은 일본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사건이다. 첫 여성 총리라는 역사적 상징성과 더불어, 보수적 노선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와 국제사회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카이치가 총리에 오른 이후 어떤 내각을 꾸리고, 어떤 메시지로 일본의 진로를 제시할지에 따라 향후 일본 정치의 색깔과 국제적 위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