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통신 "넥스페리아, 중국 모회사에 핵심 기술 이전 의혹"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 기업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반도체 제조업체 넥스페리아(Nexperia)의 경영권을 장악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넥스페리아가 심각한 거버넌스 결함을 갖고 있다"며 "유럽의 경제 안보가 위험에 노출돼 이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밝혔다.
넥스페리아는 자동차와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기초적인 칩을 생산한다.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처럼 고성능 칩을 만들지는 않지만 전 세계 전자산업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17년 옛 '필립스 반도체'의 후신인 NXP에서 분사한 후, 이듬해 중국 국유펀드 컨소시엄에 27억5000만 달러(약 3조9000억원)에 매각됐다. 중국 국유펀드 컨소시엄은 2019년 이 회사 지분 전량을 중국 반도체 기업 윙테크에 팔았다.
윙테크는 지난 2006년 중국 테크 기업 ZTE 연구원 출신 임원 장쉬에젱이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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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7일(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넥스페리아의 생산라인에서 한 직원이 웨이퍼를 다루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네덜란드 경제부는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네덜란드와 유럽 내 핵심 기술 지식과 역량의 지속성과 보호에 위협이 커지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비상 상황에서 넥스페리아가 생산하는 완제품 및 반제품이 공급되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빈센트 카레만스 경제장관은 "정부는 앞으로 넥스페리아 이사회가 내리는 결정을 차단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소유주인 윙테크는 네덜란드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몇 시간 전에 상하이 증권거래소 공시 자료를 통해 "네덜란드 정부가 지난달 30일 넥스페리아 및 전 세계 자회사·지점·사무소가 1년 동안 자산과 지적재산권, 사업 운영, 인력에 어떤 변경도 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자국의 '상품 가용성 법'을 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네덜란드 정부는 넥스페리아로부터 모회사인 윙테크로의 핵심 기술 이전을 강하게 우려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정부 발표는 12일 나왔지만 실제 조치는 지난달 30일 실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네덜란드 정부가 비상조치를 취하자 다음날인 이달 1일 네덜란드 및 독일 국적의 넥스페리아 고위 임원 3명이 암스테르담 항소법원에 넥스페리아의 경영권 행사를 금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장쉬에젱 윙테크 창립자 겸 회장이 갖고 있던 넥스페리아의 집행역 이사 지위와 넥스페리아의 지주회사인 '넥스페리아 홀딩'의 비집행역 이사 지위를 정지시켰다.
법원은 이어 지난 7일 넥스페리아의 모든 주식을 제3자가 신탁 관리하도록 명령하면서 비(非)중국인 독립 이사를 새로 임명해 결정적인 의결권과 독립적 대표 권한을 갖도록 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윙테크는 "이번 조치는 사실에 기반한 위험 평가가 아닌 지정학적 편견에 따른 과도한 간섭 행위"라며 "이번 조치는 유럽연합(EU)이 오랫동안 옹호해온 시장경제 원칙, 공정 경쟁, 국제 무역 규범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국가 안보 개념의 남용과 중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 반대한다"며 "네덜란드가 진정으로 시장 원칙을 준수하고 경제·무역 문제의 정치화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윙테크가 "중국의 민감한 반도체 기술 확보를 돕고 있다"며 이 회사를 '수출 제재 명단(Entity List)'에 올렸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윙테크에 제품을 판매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이 제재를 윙테크의 모든 자회사에도 확대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넥스페리아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영국 정부도 지난 2022년 11월 안보 우려를 이유로 넥스페리아의 뉴포트 웨이퍼 팹(Newport Wafer Fab) 인수를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