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시장 "민간인 학살 지휘자 예우, 도민에 또 다른 상처"
유족 "양민 학살 원흉 규정은 왜곡… 역사적 재조명 이뤄져"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국가보훈부는 지난 10월 20일 서울보훈지청장 명의 안내문을 통해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법 제4조 1항 7호(무공수훈자) 적용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유족 측에 통보했다. 유족은 같은 날 을지무공훈장 수훈(을지무공훈장) 이력을 근거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고, 보훈부가 이를 수용해 11월 4일 국가유공자 증서를 발급,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던 박 대령의 법적 지위를 '무공수훈자 국가유공자'로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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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5월 6일 제9연대장으로 부임한 박진경(맨 오른쪽) 중령이 작전에 참여한 연대 참모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1920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한 박 대령은 제주도 지리를 잘 알고 영어가 능통해 미군의 신뢰가 높았다. 남로당 무장대와의 평화협상과 소극적 진압을 해온 김익렬과 달리, 박진경은 선무공작과 아울러 적극적 진압작전을 펼쳐 유격대를 산속으로 몰아넣어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진=박철균 제공] 2025.12.10 gomsi@newspim.com |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제주에 주둔한 육군 제9연대장으로 부임해 무장세력 진압 작전을 지휘하다, 그해 6월 휘하 장교 문상길 중위가 하사 손선호에게 지시한 총격으로 피살됐다. 장례는 육군장 제1호로 치러졌고, 문 중위와 손 하사는 재판을 거쳐 같은 해 9월 사형이 집행됐으며, 정부는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30일 그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박 대령은 이미 전몰군경으로 인정돼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으며, 보훈부는 11월 4일 국가유공자 증서를 다시 발급해 법적 지위를 명확히 했다. 증서에는 '국가 발전이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뤄졌다'는 취지의 문구와 함께 국가유공자 명부 등재 사실이 기재됐다.
유족은 이번 결정을 "역사적 재조명"으로 보고 있다. 박진경 대령의 양손자인 박철균 동국대 교수(예비역 육군 준장)는 "할아버지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면서 국가유공자라는 점을 공식 확인받았다"며 "현 정부에서 국가유공자임을 인정한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유족 측은 그간 제주 현지에서 박 대령 추도비 훼손 시도가 이어진 점을 언급하며, 국가유공자 지위가 추모비의 현충시설 지정과 훼손 방지에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다.
박홍균 고 박진경 대령유족회 사무총장은 "박 대령은 제주도민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진행하다 암살됐다는 것이 당시 동료 장교들의 일관된 증언"이라며 "그럼에도 4·3 관련 단체 등에서 '양민 학살의 원흉'으로 몰아온 것은 사실과 다른 평가"라고 했다. 그는 "국가유공자 등록은 이러한 왜곡을 바로잡는 행정 조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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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훈부는 지난달 4일 박진경 대령 유족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전달했다. [사진=박진경 대령 유족] 2025.12.10 gomsi@newspim.com |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간인 학살 작전을 지휘한 책임이 있는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잘못된 제도가 도민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며 제주도가 중앙정부와 함께 현행 체계를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오 지사는 "박진경 추도비 앞에 객관적 사실을 담은 '진실의 비'를 다음 주 월요일(15일) 세워 국가폭력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예고하고, 4·3 희생자·유족 명예훼손 처벌 조항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보훈부는 10일 입장문에서 "이번 조치가 국가유공자법 제4조·제6조에 따른 법 절차에 근거한 행정처분이었다"면서 "(제주4·3 관련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미흡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또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계기관과 협의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