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억원 '가성비'의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으로 FA선수들 관심 식어
[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이번 겨울 프로야구 자유계약(FA) 시장은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박찬호(두산), 최형우(삼성), 김현수(kt) 등 간판급 야수들의 계약 소식은 비교적 빠르게 전해졌지만, 불펜 투수 최대어로 꼽히던 선수들의 이름은 좀처럼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고, 이대로라면 일부 선수들은 해를 넘겨서야 거취가 정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올겨울 FA 불펜 시장의 중심에는 이영하(두산), 조상우, 김범수, 홍건희가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계약을 마무리한 선수는 이영하였다. 이영하는 지난 11월 28일 원소속팀 두산과 4년 최대 52억 원에 합의하며 비교적 이른 시점에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약 한 달이 지났음에도 나머지 불펜 자원들의 계약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등급으로만 놓고 보면 조상우는 A등급, 김범수는 B등급 FA이며 홍건희는 보상 없는 자유계약 신분이다. 이름값과 커리어만 놓고 평가하면 조상우는 리그를 대표하는 불펜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이번 시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조상우는 72경기에서 60이닝을 던지며 6승 6패 28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3.90을 기록했다. 숫자 자체만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시즌 내내 기복 있는 투구 내용이 반복되면서 구단들의 평가가 다소 냉정해진 것이 사실이다.
반면 김범수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였다. 김범수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입지가 크게 흔들리던 선수였다. 2024시즌 3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29에 그치며 부진했지만, 올 시즌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좌타자 상대 원포인트 릴리프 역할에 충실하며 73경기 48이닝에서 2승 1패 2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평균자책점 2점대에 진입하며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세부 지표 역시 눈에 띄게 개선됐다. 9이닝당 볼넷 허용은 4.13개로 데뷔 이후 가장 낮았고, WHIP(이닝당 출루 허용) 역시 커리어 하이인 1.08을 기록했다. 피안타율도 0.181로 처음 1할대에 진입하며 안정감을 증명했다. 정규시즌 활약에 그치지 않고 포스트시즌에서도 7경기에 등판해 3.1이닝 무실점, 홀드 2개와 세이브 1개를 기록하며 팀의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A 시장에서 김범수와 조상우의 행선지는 쉽게 정해지지 않고 있다. 이미 FA 영입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구단들이 적지 않고, 구단 전반이 투자 규모를 줄이는 분위기 속에서 이들 역시 원소속팀과의 재계약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진다.
다만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다. 조상우는 커리어 전반의 성적은 뛰어나지만 올해 성적이 아쉬웠고, 김범수는 반대로 커리어 누적 성적은 부족하지만 올 시즌 활약이 워낙 뛰어났다. 선수와 구단이 바라보는 계약 기준점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김범수의 원소속팀 한화는 다음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는 노시환과의 비FA 다년 계약을 추진 중이다. 팀의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김범수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모양새다. 여기에 한화는 한승혁이 FA 보상선수로 kt로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준서·조동욱 등 젊은 좌완 불펜 자원이 풍부해 불펜 뎁스에 큰 공백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다.
홍건희의 경우는 또 다른 맥락이다. 홍건희는 옵트아웃(잔여계약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획득) 조항을 발동해 FA 시장에 나왔기에, 타 구단이 영입하더라도 두산에 보상선수나 보상금이 필요 없다. 조건만 놓고 보면 시장에서 빠르게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다르다.

홍건희는 두산 이적 첫해인 2024시즌 6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73으로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2025시즌에는 1군 20경기 16이닝 등판에 그쳤고 평균자책점은 6.19로 급격히 악화됐다. 이 같은 경기력 저하는 여러 구단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다.
이들 불펜 FA들의 시장 가치가 기대만큼 형성되지 않는 가장 큰 배경으로는 아시아쿼터 제도의 도입이 꼽힌다. 내년 시즌부터 시행되는 아시아쿼터는 아시아야구연맹 소속 국가와 호주 국적 선수를 대상으로 팀당 한 명씩 보유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신규 영입 상한액은 20만 달러, 한화로 약 2억9000만 원 수준이다.
현재 KIA를 제외한 9개 구단이 이미 아시아쿼터 영입을 확정했으며, 이들 모두 투수를 선택했다. 특히 7개 구단은 일본인 투수와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대부분 시속 140㎞ 중후반에서 150㎞ 이상을 던질 수 있는 즉시전력감으로 평가받고 있고, 필승조 역할까지 기대받고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3억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경쟁력 있는 투수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내 FA 불펜 투수들에게 거액을 투자할 명분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결국 불펜 보강이 필요한 구단들은 아시아쿼터를 통해 급한 불을 끄고, 국내 FA 불펜 자원들에게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수들이 몸값을 낮춰 계약을 성사시킬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앞서 체결된 불펜 FA 계약 사례들을 고려하면 자존심을 쉽게 내려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선수들이 결단을 내려야 하고, 구단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입장에서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불펜 FA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이들의 거취가 언제 정해질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wcn050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