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정식 의제로 올라...신원 확인 등 논의
'과거사 문제 인도적 협력'으로 신뢰회복 시도
"과거사 문제 접근법 변화 모색의 계기될 것"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오는 13일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정식 의제로 올려져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일제강점기 '조세이 탄광'(장생 탄광) 수몰 사고 문제를 공식 논의하기로 했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일 한·일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조세이 탄광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협의의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문제가 정상회담에 논의되는 것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국가 간 외교 사안으로 격상시키는 조치라는 점에는 큰 의미가 있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갱도에서 발생한 사고다. 안전 기준을 무시하고 해저 37m의 얕은 지점에서 갱도를 굴착하다가 183명의 노동자들이 수장됐다. 이 중 136명이 조선에서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었다.
사고 직후 회사 측은 구조나 시신 수습 대신 바닷물 유입을 막기 위해 갱도 입구를 콘크리트 벽으로 막았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그대로 해저에 남겨졌고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은폐해 실제 피해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희생자들의 유해 수습과 사고 진상 규명 노력은 지금까지 한·일 양국의 민간 단체의 주도로 이어져 왔다. 2013년 우베 시에 추도비가 세워지고 2024년에는 갱도 입구의 콘크리트벽을 여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8월 잠수 조사에서는 희생자들의 인골로 추정되는 유해 일부가 발견됐다.
이 사고는 조선에서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에 강제로 투입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사고로 희생당한 전형적인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의 형태다. 하지만 이 문제가 양국 정부 사이에 처음으로 논의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한·일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요청에 따라 일본에 남아 있는 조선인 노동자 유해의 위치를 조사하고 유해 반환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조세이 탄광을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라 일본 내 모든 조선인 노동자 유해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 합의였다.

조세이 탄광 문제가 양국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시민단체가 피해자 유골을 발견한 이후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11월 "조세이 탄광에서 발견된 유해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다양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5일에는 이혁 주일 대사가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조세이 탄광에서 발견된 조선인 유해에 관해 양국 당국 간 협의가 진행 중이며, DNA 감식과 유골 처리도 논의에 포함된다"고 밝혀 외교 채널에서 이 사안이 다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가 됨에 따라 양국 정부의 유해 조사·신원 확인 작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조세이 탄광 문제가 정상 간 대화에서 논의되는 것은 양국 정부가 비교적 손대기 쉬운 과거사 문제부터 해결해 양국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법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문제보다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해 수습과 신원확인, 진상 규명, 유해 귀향 등 인도적 조치를 진행시켜 신뢰를 쌓는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계획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관료 출신의 전문가는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신원 확인·봉환 등이 정상 간에 논의되는 것은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 문제에 대한 공방으로 이어져온 한·일 과거사 문제의 접근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찾아내 존엄을 회복하도록 하는 인도주의적 접근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