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독일 문학의 품격을 높인 대문호, 괴테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예술보다 사랑, 사랑보다 예술(2)
서울 남산에 위치한 주한 독일문화원 '괴테 인스티튜트' 전경 <사진=이철환>

“발하임으로 이주한 지식인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로테에게 한눈에 반한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접근하여 친교를 맺고 집을 왕래할 정도로 그녀와 가까워진다. 로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커져갈 무렵 갑작스레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발하임으로 돌아오면서 베르테르는 크게 실망한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로테를 향한 연정이 깊어지면서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와도 불편한 관계가 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로테를 잊고자 발하임을 떠나보기도 했지만, 귀족사회의 퇴폐적이고 퇴영적인 모습에 좌절하여 다시 발하임으로 돌아온다. 이미 유부녀가 되어버린 로테의 주위를 맴돌며 베르테르는 고통스러워하고,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친밀감과 호감을 느끼면서도 남편을 위해 베르테르와 거리를 두고자 한다. 결국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구애하며 키스를 시도하고, 당황한 로테는 베르테르와의 절교를 선언한다.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총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쏘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젊은 지식인 베르테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줄거리다. 이는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로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그 편지는 1771년 5월 4일에 시작해서 1772년 1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1774년 발표된 이 작품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가 하면, 작품 속 베르테르의 자살을 모방해서 자살을 감행한 사람이 2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러한 베르테르식 열병을 우려한 나머지 소설은 1775년 판매금지 당하기도 했다.

이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하는 현상을 일컬어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부르고 있다. 완성에 거의 60년이 소요된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조차도 이 작품의 인기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작 괴테는 자신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로만 기억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독일 '질풍노도(Sturm und Drang)'운동과 바이마르 고전주의 운동의 지도자였고, 유럽에 낭만주의를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어는 '짐승의 언어'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천대받고 있었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불어와 영어뿐이었다. 그러나 괴테의 작품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자 독일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괴테는 또 문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학식을 지닌 천재였다. 생물학, 해부학, 지질학 등 과학 분야에서 14권의 저서를 펴냈고, 화가로서 3천점에 이르는 그림을 남겼다. 이러한 그의 업적과 영향력을 기려 독일 정부는 자국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른 나라에 세우는 해외문화원의 명칭을 '괴테 인스티튜트(Goethe Institut)'라고 지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대학 졸업 후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있던 중 약혼자가 있는 샤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의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는 1775년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그곳을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해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를 만나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건축· 회화· 조각 등 고대 조형예술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특히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화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1천점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다. 그리고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 생애에서 고전주의로의 지향을 결정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실러와의 상봉은 그의 문학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합적이고 직관적인 괴테와 이념적이며 분석적인 실러와의 문학적인 친교는 1805년에 실러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괴테의 대표적인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도 이 시기에 출간되었다.

실러의 죽음으로 괴테는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에도 창작과 연구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시와 진실' 등 일련의 자서전을 저술하기 시작하는 한편, 이미 착수했던 창작의 완성에 힘썼다.

괴테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의 7년 전쟁, 프랑스대혁명, 나폴레옹 점령기와 몰락 과정도 지켜보았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들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런 말도 남겼다.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 (Who never ate his bread in tears, Who never lay awake for hours Plagued by doubts and fears, Knows you not, you heavenly powers!)”

괴테는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여성은 괴테에게 남성의 영원한 인도자요 창조적 삶의 원천인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가장 숭고한 노력의 구심점이었다.

그의 첫사랑은 스물한 살의 나이에 만났던 프리데리케 브리옹이라는 시골처녀였다. 그녀는 첫사랑이기에 괴테의 여러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괴테는 잠든 프리데리케를 깨울 때도 자신이 쓴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괴테는 점차 그녀에게 흥미를 잃어가게 된다. 이후 괴테는 그녀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 '파우스트'에 드러난 ‘순진한 처녀를 괴롭힌 것에 대한 죗값’은 프리데리케에 대한 죄책감의 투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두 번째 사랑은 그 유명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하게 한 샤로테이다.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있던 1772년 괴테는 19세의 샤로테 부프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시기는 프리데리케와 헤어진 지 1년도 되지 않던 때였다. 그러나 새로운 사랑 또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샤로테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은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 출간연도가 그들의 첫 만남으로부터 2년 뒤인 1774년이며, 주인공의 이름이 '로테'인 것 또한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즈음 친구 아내를 사랑하다 자살한 예루살렘이란 사람에 대한 뉴스는 괴테가 이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래서 펜을 든 지 불과 4주 만에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괴테를 일약 최고의 문필가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괴테는 그때부터 독일적 인간 사상해방 문학운동인 '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샤로테 부프에 대한 사랑이 허망하게 끝난 뒤에도 그의 여성편력은 지속되었다. 바이마르 공국에서 공직생활을 할 무렵, 괴테는 유부녀인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을 만났고 그 관계는 12년 동안이나 이어진다. 그는 샤로테 부인과의 만남 속에서 인간적 및 예술적 측면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부인을 향한 애정과 동경, 질풍노도의 격정을 극복하고 절도를 지키며 체념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평정을 찾고 인간으로서 원숙해 갔다. 그러나 이 둘의 애정관계도 1786년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 오르면서 끝을 맺게 된다.

그 뒤 1788년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고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 결혼을 통해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지만 얼마 후 아내 불피우스가 죽자 사랑의 불길은 또 다른 여인에게로 향한다. 아내가 죽은 지 얼마 후 빌레머 부인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그녀를 사모해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이 간행되었다.

괴테의 여성 편력은 그의 나이 72세가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1821년 여름, 그는 피서여행 차 체코 지방의 마리엔바트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알게 된 17세의 처녀 울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55세의 나이차가 있는 이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노인네의 추태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괴테 자신은 매우 진지했다. 당시 울리케는 괴테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그(괴테)는 아침에 산책을 나갈 때면 거의 매일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나는 함께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꽃을 가져다주곤 했다. 그는 문 앞 긴 의자에 앉아 온갖 것에 대해 몇 시간이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대단한 학자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신뢰했다.”

괴테는 그녀를 알게 된 지 2년이 되던 해 청혼을 하였는데, 청혼하기 전 의사에게 건강진단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청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크게 상심한 괴테는 그 연모의 정을 '마리엔바트의 비가'라는 시집에 담게 된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읊었다. “울리케로 인해 나의 탄식은 멈추었다.”

괴테는 인생의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 로맨티스트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하고 시를 쓰며 편지를 보냈다. 괴테는 자신의 삶을 세단어로 표현했다.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그리고 배웠노라.”

사랑을 통해 아파하고 고뇌하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시인 괴테. 그는 스물네 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SK하이닉스 17년만에 상한가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SK하이닉스가 31일 장중 상한가에 진입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반도체 승부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불황 속에서 SK하이닉스 인수를 밀어붙였던 최 회장이 최근 주가 급락 국면에서 개인 명의로 처음 자사주를 사들인 지 하루 만에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21분 기준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39만6000원(29.95%) 오른 171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고가이자 가격제한폭 상단이다. 거래량은 853만6822주를 기록 중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주식 3620주의 평가액은 현재가 기준 62억1916만원이다. 공시상 취득금액 49억31만740원과 비교하면 미실현 평가이익은 13억1884만9260원이다. [사진=뉴스핌DB,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매수 당일 종가인 132만2000원을 적용한 평가액은 47억8564만원으로 취득금액보다 약 1억1467만원 낮았다. 주식을 사들인 직후에는 평가손실을 기록했지만, 이튿날 주가가 상한가로 급반등하면서 하루 만에 13억원대 평가이익으로 전환됐다. 이번 매수는 단순한 내부자 주식 취득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회장이 그룹의 사업 구조를 반도체 중심으로 바꾼 SK하이닉스 인수의 당사자인 데다, 최근에도 AI 시대 메모리 수요와 SK하이닉스의 장기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거듭 드러냈기 때문이다. SK의 반도체 사업 구상은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선대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세우며 반도체 진출을 추진했지만 2차 오일쇼크로 계획을 접었다. 이후 최 회장이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하고 2012년 SK하이닉스를 출범시키면서 30여 년간 이어진 반도체 사업 구상이 현실화됐다. 최 회장은 당시 출범식에서 "30여년 만에 반도체 사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인수는 당시에도 순탄한 결정은 아니었다. 반도체 업황이 침체돼 있었고, 정유·통신을 주력으로 하던 SK와의 사업적 연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15년 전 업황 부진기에 회사 인수를 결정했던 최 회장이 이번에는 주가 급락기에 직접 주주로 나섰다는 점도 주목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전날 장내에서 SK하이닉스 보통주 3620주를 매입했다. 최 회장이 SK스퀘어를 통하지 않고 개인 명의로 SK하이닉스 주식을 보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득단가는 주당 135만3677원이며 총취득액은 49억31만740원이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기준인 50억원보다 9968만9260원 적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을 거래하려면 거래 개시 30일 전까지 매매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거래 수량이 발행주식 총수의 1% 미만이면서 거래금액도 50억원 미만이면 사전공시 의무가 면제된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사전공시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매입 규모를 최대한 늘려 최근 급락장에서 신속하게 책임경영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17일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SK하이닉스 주식에 대해 "샀다 팔았다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게 재산 보전에 좋은 방법"이라며 "메모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주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dconnect@newspim.com 2026-07-31 14:38
사진
민주당 당대표 여론조사 보니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적합도·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정청래 후보, 민주당 지지층에선 김민석 후보가 앞서는 흐름이다. 오는 8월 1일 충청권 첫 지역 순회 합동 연설회와 경선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어 민주당 전대 열기가 더욱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김민석(왼쪽부터), 정청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에서 열린 방송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07.29 photo@newspim.com ◆ NBS, 정청래 21% 김민석 19% 송영길 6%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7~2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를 진행한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차기 당대표 적합도 정청래 후보 21%, 김민석 후보 19%, 송영길 후보 6% 순이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 34%, 정 후보 29%, 송 후보가 9%로 나타났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 오마이뉴스 민주당 지지층, 김민석 41.6% 정청래 37.7% 송영길 9.5% 오마이뉴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STI)가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성인 남녀 중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 11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대표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김 후보 41.6%, 정 후보 37.7%, 송 후보 9.5%였다. 오마이뉴스 조사는 구조화된 질문지를 사용한 휴대전화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 뉴스토마토, 정청래 36.9% 김민석 28.0%, 송영길 9.2%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전국 18살 이상 남녀 10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차기 당대표 선호도 1순위로 정 후보가 36.9%였다. 김 후보는 28.0%, 송 후보는 9.2%였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김 후보가 44.9%로 정 후보 38.9%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 송 후보는 11.2%였다.  선호투표제 도입에 맞춰 실시한 2순위 선호도 조사에서는 송 후보가 33.9%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 이어 김 후보가 12.9%, 정 후보 9.0% 순이다. 송 후보를 2순위로 선택한 57.9%는 김 후보를 1순위로 꼽았다. 36.9%는 정 후보를 선택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는 무선 전화 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주당은 이번 당대표 선거에 선호투표제를 처음 도입했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후보 한 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2·3순위 선호 후보를 함께 기입하는 방식이다. 먼저 1순위 득표를 집계해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그대로 당선자가 결정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땐 최하위 득표자의 2순위 표를 배분한다. 각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jeongwon1026@newspim.com 2026-07-31 10:2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