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자본확충 이유로 고배당 자제 요구
배당 점진적 증가 정책 퇴보
[뉴스핌=최유리 기자]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둔 주요 금융지주사가 배당은 줄였다. 당초 이익 증가에 맞게 배당을 늘리려했지만 금융당국이 규제 강화에 대비해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며 고배당 자제를 요구하자 접었다는 분석이다.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전년보다 배당성향(순이익에서 배당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췄다. 실적이 늘어난 만큼 배당 총액은 많아졌지만 당초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수준이다.
주요 금융지주사 중 신한금융의 배당성향 축소폭이 가장 컸다. 순이익이 늘어났음에도 배당총액은 총 6875억원으로 전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배당성향은 23.5%로 전년 대비 1.2%포인트 감소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하나금융과 KB금융도 배당성향이 줄었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순이익 2조368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순이익이 전년 대비 53.1% 증가한 만큼 배당 총액도 늘었다. 그렇지만 배당성향은 22.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낮아졌다.
KB금융도 지난해 순이익 3조3119억원을 기록하며 지주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순이익 3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중 총 7667억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배당성향은 23.1%로 전년 대비 0.08%포인트 하락했다.
하나금융과 KB금융은 최근 배당성향을 확대해 왔으나 지난해 들어 이 추세가 꺾이게 됐다. 하나금융은 2014년 18.5%, 2015년 21.1%, 2016년 22.3%로 배당성향을 늘려왔다. 같은 기간 KB금융도 21.5%, 22.3%, 23.2%로 배당성향을 확대했으나 지난해 흐름이 바뀌었다.
업계에선 당국의 고배당 자제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IFRS9 도입에 따라 고배당 자제를 요청하고 바젤Ⅲ 자본규제강화 등에 대비하기 위해 자본을 더 확충하라고 요구했다.
IFRS9은 대출 만기까지 예상되는 손실을 추산해 미리 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회계기준이다. 기존에는 1년 동안 부도확률을 계산해 기업여신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쌓았는데 IFRS9에서는 여신의 실제 만기까지 부도확률을 계산해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은경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의 자본적정성 제고나 고배당 자제 요구에 부응한 의사 결정으로 판단된다"며 "배당성향 개선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도 "배당성향이 낮아졌을뿐 아니라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서 그동안 밝혔던 배당의 점진적 증가 정책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 상승기에 배당쪽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자본 이득에 신경 쓰겠다고 언급한 만큼 배당정책의 의미있는 퇴보"라고 풀이했다.
다만 당국의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어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실적이 견조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배당 성향을 꾸준히 늘리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적정성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등을 하긴 하지만 배당 성향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은행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서 자본을 충당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내용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