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 오랜 시간 지나도 잔상은 그대로...고통 반복
전문 센터 마련 시급…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동반돼야
[편집자] 자살예방은 지구촌이 안고 있는 공통과제다. 우리나라 역시 대응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한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1만명을 넘긴 지 오래다. 40분마다 1명, 하루 36명이 생명의 끈을 놓는 한국은 경재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 위기감이 고조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을 지 모를 자살.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그 심각성을 짚어보고,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춘 예방법을 살펴봤다.
[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자살은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가족은 물론 시신을 목격한 경찰이나 수습한 119 대원, 투신자살 사고를 경험한 전동차 기관사 등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심한 경우,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또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떠난 사람뿐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도 관심과 치유가 필요한 이유다.
자살 유가족들은 갑작스럽고 예측하지 못한 가족의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들을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이 많이 나요.”
A씨 동생은 1년여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가족들은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 하다 이사를 결정했다. A씨는“매 순간 동생이 생각나지만 티를 내지 않을 뿐”이라고 울먹였다.
전문가들은 자살 유가족들의 심리 안정과 회복을 위해 주위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유가족들은 가족이 자살로 사망하면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며 “너무 갑작스럽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울증, 불면증에 빠지거나 심지어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직업 상 자살을 목격하는 사람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열차 기관사가 대표적이다. 최근 지하철 투신 등 자살 추정 사고 건수는 감소세지만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김 모 기관사는 지난 2009년 성환역과 직선역 사이에서, 2013년 오산역에서 투신 사고를 겪었다. 첫 번째 사고로부터 1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아직 해당 구간을 지날 때면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사고 지점에 근접하면 당시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린다.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소소용없다”며 “승객이 이상 행동을 할 때, 작업 구간에서 작업자가 완전하게 대피하지 않았을 때 혹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을 때 공포에 사로잡힌다”고 토로했다.
자살 현장을 보는 것이 괴롭기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형사를 하다 보면 다양한 죽음을 목격한다”며 “숱하게 그런 장면을 접하다 보면 트라우마가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게다가 이런 것들이 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상당히 끼친다”고 말했다.
또 “20년 전 소복 같은 잠옷을 입고 목숨을 끊은 여인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몇 달간 꿈에서 망자가 나와 잠을 설쳤다. 한 달간 밥을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괴로워했다.
목격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경우는 실제로 적지 않다. 김원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자 한 명으로 최소한 주변의 여섯 명이 큰 충격을 받는다”며 “보통 ‘왜 잘해주지 못했나’ ‘왜 막지 못했나’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살 목격자들은 ‘남겨진 사람’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내부에도 상담 센터가 있지만 활성화돼 있진 않다”며 “사실상 변사 현장을 오가는 형사들을 위한 장치가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그는 “트라우마 극복 센터가 있어야 된다. 선진국처럼 안 좋은 상황을 목격하는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심리 상담 센터가 꼭 도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 역시 “당시 센터를 알아봤는데 평일에 주로 상담을 지원하더라. 직장이 끝나고 가면 시간이 맞지 않았다”며 “상담을 받아도 뭐가 해소될 지도 모르겠고, 가족 일을 다시 꺼내야 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목격자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김 기관사는 “기관사는 사고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보니 회사에서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라면서도 "‘남의 일이니까’라는 인식이 아직도 느껴진다. 자살 목격자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 같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자살도 결국엔 무관심 때문에 계속 늘어나는 건데, 이를 고치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죽음은 잔상이 굉장히 오래 가기 때문에 목격자에 대한 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대리근무제 도입 등 기관 내부 시스템이 먼저 필요한 시점이다. 심한 경우엔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식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km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