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김순기:게으른 구름'전 내년 1월까지
9월 8일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 공개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975년, 내가 미술하면 ‘여자가 건방지다’고 했다. 여자가 아니고 ‘젊은여자 기집애’라더라.”
한국이 아닌 프랑스를 주무대로 활동한 작가 김순기(73)는 국내에서 작가 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상황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권위가 지금보다도 낮았으며, 미술계에서 여성 작가의 위치도 별만 다르지 않았다. 미술계 여성작가에 대한 연구와 발견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집중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김순기 작가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김순기: 게으른 구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순기: 게으른 구름'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재불작가 김순기 작가의 삶과 예술, 자연이 조화된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다. 2019.08.29 mironj19@newspim.com |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그간 정립되지 못한 한국 미술계 여성작가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인식하고 김순기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전시 ‘김순기:게으른 구름’은 오는 31일부터 내년 1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재불작가 김순기의 삶과 예술, 자연이 조화된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다. 김순기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 니스의 국제예술교류센터 초청작가로 선발되면서 도불했다. 니스국립장식미술학교, 디종국립고등미술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국내 활동이 많지 않았던 김순기 작가의 개인전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미술사를 정립하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 미술사에서 구멍이 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걸 제대로 매우는 게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김순기 작가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김순기: 게으른 구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김순기: 게으른 구름'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재불작가 김순기 작가의 삶과 예술, 자연이 조화된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다. 2019.08.29 mironj19@newspim.com |
이어 “특히 여성작가에 대한 연구가 잘 안됐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미술사에서 제외됐다는 책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미술사를 정립하는데 있어 김순기 작가의 전시가 필요하다는 확신 아래 추진했다”며 “선생님은 50년간 외지에 있었지만 근본은 한국적인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그가 계신 곳이 어디든 상관 없이 한국 미술을 새롭게 쓰는 데 필요한 작가인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순기 작가는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기에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 작가는 “국내에서 활동할 때는 학생이었다. 정성오, 박서보 선생이 국내 현대미술을 장악했다. 여자가 미술을 한다는 간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1975년 프랑스에서 작업하다 정성오 선생님의 권유로 미국 문화원에서 '김순기 미술제'를 열었다. 정서가 답답해 작품을 외부에 전시했는데 계속 철수해갔다. 그래서 밤새 작품을 다시 만들어 재설치했다. 그게 여러번이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프랑스 미술 전문지 ‘아트프레스’가 꼽은 미술가 7인에도 꼽혀 기사가 실릴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럼에도 한국 작가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 작가 중 7명을 선별한 기사에 제가 들어갔는데도 한국 미술가들은 나를 모르는 척했다. 김순기를 모른다더라. 그러니까 파리비엔날레 한국 대표들이 와 있는데 근처에도 못갔다”고 회상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주파수 색동 위에 시(김순기와 백남준), 왼쪽이 백남준 2019.08.29 89hklee@newspim.com |
김순기 작가는 존 케이지, 백남준 등 1970~1980년대 현대미술을 풍미한 당대 최고 아티스트들과 협업은 물론 전시기획과 영상 인터뷰 작업도 진행했다. 전시장에서는 김순기 작가와 백남준 작가가 색동지 위에 시를 쓴 비디오 작품과 설치작품을 볼 수 있다.
또한 김순기가 1986년 마르세이유에 위치한 비에유 샤리떼라는 곳에서 ‘비디오와 멀티미디어: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나라의 예술가 동료를 초대해 퍼포먼스와 전시, 토론과 파티의 장을 담은 영상도 전시돼 있다. 여기에는 존 케이지, 백남준, 프랑스 철학자 다니엘 샤를르, 일본 비디오아트 선구자 고 나가지마, 'Time Zone'의 24개 비디오 설치로 유명한 미국의 이라 쉬나이더, 데이비슨 질리오티 등 초기 비디오아트의 주요 작가들이 등장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전시를 소개하고 있는 작가 김순기 2019.08.29 89hklee@newspim.com |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넓은 스펙트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서예부터 비디오아트, 회화,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경험화될 수 없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김순기의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수정 큐레이터는 “김순기 작가는 하나를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걸 보고 싶다고 늘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여러 영역에 도전하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양화에서는 시와 서, 화가 능해야 하는데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동양예술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동시에 그는 시인이다.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하지만 ‘게으른 구름’은 선생님이 직접 지은 시의 제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로봇 영희 2019.08.29 89hklee@newspim.com |
전시마당에는 2019년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고찰한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를 선보인다. 입력된 명령만 수행하는 로봇 '영희'와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무당이 등장한다. 김순기 작가는 “우리 사회는 기능적인 것, 실질적인 결과를 낳는 것만 찾는다. 로봇은 도와주는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반대로 논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본다든가 가만히 있다. 시에 대해 물어보면 바보같은 대답만 할 것”이라며 “공식적인, 규율적인 것 그 반대를 찾고 있었다. 전시 기간 내내 복도에서 로봇이 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