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1964~)이 과거 런던시장 시절에 의욕적으로 만들었던 115m 높이의 올림픽 조형물이 부채의 늪에 빠졌다. 보리스 런던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런던시장으로 재직했는데, ‘제30회 런던 하계올림픽(2012)’을 맞아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여신상에 필적할만한 조형물을 건립하고자 했다.
이에 각국의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조형물 디자인을 공모했고, 최종적으로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아니쉬 카푸어(1954~)의 작품이 채택됐다. 카푸어는 영국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실력파 작가로, 이미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구름’ 조형물, 모나코 도심의 초대형 조각 등 전세계 곳곳에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남긴바 있다. 특히 시카고 도심에 설치된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구름’은 시민은 물론, 여행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카푸어는 붉은색 띠 형상의 철구조물이 구불구불 하늘로 솟구치는 ‘오르빗(Orbit)’을 제안해 런던 동부 스트랫퍼드 지역에 세웠다. 스트랫퍼드에는 올림픽 주경기장과 선수촌 등 6개의 올림픽시설이 들어서며 ‘퀸엘리자베스 올림픽공원’으로 명명됐다.
세계 최장인 176m의 미끄럼틀이 추가된 런던올림픽 조형물 ‘오르빗’. [사진=퀸엘리자베스 올림픽공원] |
문제는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난 후, 카푸어의 이 ‘궤도’ 조형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로 모아졌다. 런던에서 가장 높은 크기의 조형물을 세우느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바람에 초기 ‘Orbit’이었던 타이틀은 ‘ArcelorMittal Orbit’으로 바뀌었다. 올림픽공원 관리업체인 런던유산개발공사가 조형물 건립비를 댄 인도의 철강기업 아셀로 미탈(ArcelorMittal)의 명칭을 덧붙인 것. 조형물 건립에 Mittal(미탈)의 오너인 Lakshmi Mittal 회장이 거액을 제공했고, 현재 대출금에 이자가 더해지면서 빚이 1300만파운드(약 191억원)로 늘었다.
디자인콘테스트에서 카푸어의 시안을 택한 존슨 시장은 ‘오르빗’이 런던의 상징이자, 최고의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적지않은 평론가들이 비판을 쏟아냈다. 대중들도 호불호가 엇갈렸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빗’에 오르려는 관광객도 점차 감소했다. 이에 올림픽공원과 공사측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카푸어에게 작품 변형을 요청했다. 카푸어는 디자인을 바꾸는 게 탐탁지 않았으나, 벨기에 출신의 설치미술가 카르스텐 휠러(1961~)가 세계 최대의 미끄럼틀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
런던 올림픽공원에 자리잡은 카푸어의 조형물 ‘Arcelormittal Orbit’. 2016년 초대형 미끄럼틀이 추가됐다. [사진=픽사베이] |
휠러는 2006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터바인홀에 대형 미끄럼틀 ‘테스트 사이트’를 설치하는 등 이 분야 경험이 풍부한 아티스트다. 그는 철강구조물인 ‘오르빗’에, 특수 플라스틱과 금속재 등으로 높이 76m, 길이 178m의 어마어마한 미끄럼틀을 곁들였다. 2016년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길이가 긴 미끄럼틀이 등장하자 영국 왕실인사를 비롯해 유명스타가 몰리면서 반짝 화제를 모았다. 2016~17년에는 19만3000명이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2018~19년에는 15만5000명으로 줄어들었고, 하반기부터는 더 줄고 있다고 한다. 미끄럼틀을 타려면 개인당 17.5파운드(약 2만5800원)를 내야만 하는데 “40초의 짜릿한 하강순간을 즐기기 위해 내는 비용치고는 비싸다”는 의견이 많아 이래저래 런던 에펠탑 ‘오르빗’은 200억원의 부채를 쉽게 탕감하기 어렵게 됐다. 어느 나라든지 올림픽시설의 재활용은 많은 숙제를 남겨주고 있음을 이 사례 또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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