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인권위 권고 따른 도입 이후 대학들 제각각 시행
성신여대·덕성여대 등 생리공결제 제도 개선에 적극적
반면 일부 대학, 교수 재량 또는 의사 진찰 필요한 진단서 증빙 여전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생리에 따른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하는 생리공결제가 도입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강제력이 없어 대학마다 온도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대학은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으나 여전히 증빙이 어려운 진단서를 요구하거나, 교수 재량에 맡기는 등 '반쪽 도입'에 그치고 있는 대학들이 대부분이라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생리공결제는 생리를 이유로 결석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인권위가 2006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생리공결제 시행을 권고하면서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10여년이 지났지만 생리공결제를 적극 도입, 시행하는 대학은 손에 꼽힐 정도다.
2016년 9월 처음 생리공결제를 도입한 성신여대는 지난해 10월 생리공결제 신청방식을 과목별 신청에서 날짜별 신청으로 개선했다. 과목별로 일일이 생리공결제 신청을 하던 불편함을 덜고 특정한 날짜의 모든 수업에 대한 생리공결제 신청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생리 결석 이후 2주 내 신청하면 되고, 모바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
성신여대 관계자는 "생리통은 특성상 증빙하기 매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운용하고 있다"며 "수업 중간에 나가더라도 학생이 정상적으로 온라인으로 신청만 하면 (출석이 인정되는) 유고결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성신여대 4학년 A(23) 씨는 "진단서를 따로 제출하지 않아도 휴대전화로 학교 포탈시스템에 접속해 간편하게 생리공결제를 신청할 수 있어서 좋다"며 "조건 없이 생리공결제를 이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고 학업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덕성여대는 '보건 결석'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9월부터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학기당 최대 3번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2017년 9월부터는 진단서나 건강증진센터 방문 없이도 온라인 신청을 통해 보건 결석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2017년 9월부터 생리공결제를 시행 중인 동덕여대는 학기당 4일 이내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9월부터 도입했으며, 서울여대는 학생들과 논의 끝에 올해 3월부터 생리공결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생리공결제 도입을 권고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대학마다 도입 수준에서 뚜렷한 온도 차를 보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01.15 clean@newspim.com |
반면 이화여대 등 별다른 이유 없이 여전히 생리공결제 도입조차 하지 않은 학교도 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학칙에 따라 담당 교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허가한 경우에는 재량에 따라 허용하는 게 원칙"이라며 "지금까지 교수 재량에 맡겼지만 크게 문제 될 게 없어서 생리공결제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생리공결제를 도입했어도 증빙자료 요구 등 각종 조건으로 인해 실제 사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경희대는 2007년 9월부터 여학생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학교생활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생리공결제를 도입했지만, 온라인 신청 후 해당 수업 교수 혹은 강사의 승인을 받도록 조건을 내걸었다. 출결에 관한 결정권이 교강사의 전권이라는 이유에서다.
성균관대의 경우 생리공결제 대신 진단서인 '출석인정신청서'를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교수나 강사가 재량으로 처리를 하게 돼 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다른 결석과 마찬가지로 생리공결제 역시 결석 이유에 대한 증빙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생리공결제가 10여년이 지나도록 반쪽에 그치는 이유는 여전히 인권위 권고사안에 머물러 있어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생리공결제 도입을 강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입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4조에는 학생의 출석 등 학점당 필요한 이수시간의 이수 인정에 필요한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고 명시돼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등교육법이나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출석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언급된 조항은 없다"며 "생리 유고결석 역시 학칙으로 정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2006년 당시 생리공결제를 권고하면서 헌법 제34조 제1항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내세우며 "여성의 생리통은 질병으로 취급할 대상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적 특성 중 하나로 보면서 여성의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의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리공결제 도입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장미혜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학생들이 취업 때문에 학점에 민감하기 때문에 일부 남학생들이 생리공결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고, 교수나 강사가 남성일 경우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 교직원에 대한 안내 및 홍보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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