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룡' 아니라 시장 포문 열어주는 리더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제약바이오 업계에 처음 출입하게 된 두 달 전 OTT 플랫폼인 왓챠를 떠올렸다. 중견 제약사의 한 해 매출액이 신생 스타트업인 왓챠의 기업 가치와 엇비슷했던 탓이다. 제약사들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었다.
대기업들이 바이오 업계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제약사나 바이오 벤처가 연구개발에 매진하기도 전에 대기업이 시장을 독식하지는 않을지 우려는 있다. 지난해 '콘텐츠 공룡'에 밀린 왓챠의 가치가 5000억원에서 780억원으로 떨어진 상황을 겹쳐본 것이다.
방보경 산업부 기자 |
하지만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시장이 너무 작으니 대기업이 들어와서 판을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고 산업 성장도 가속화될 수 있다. 시장이 충분히 커지면 비효율적인 규제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대기업은 무시무시한 '공룡'이 아니라, 시장의 포문을 활짝 열어주는 리더인 셈이다.
대기업들에서는 상생협력에 힘쓰겠다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대기업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1바이오 캠퍼스에 이어 제2바이오 캠퍼스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7조5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메가 플랜트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먼저 중소 기업에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신약 개발부터 상업 생산에 이르는 바이오 생태계 조성이 머지않았다.
다만 거대 자본의 순기능만을 논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사건은 있다. 지난 18일부터 논란이 됐던 롯데헬스케어와 알고케어의 공방이다. 롯데헬스케어는 최근 알고케어의 아이디어를 훔쳐 개인맞춤형 헬스케어 제품을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양쪽의 증언은 엇갈리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몫을 빼앗았다는 선례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기업이 게임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더라도 왓챠 같은 스타트업은 늘 밀려날 위기에 놓여 있다. 태동기인 바이오 산업은 더더욱 그렇다.
hell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