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위원장, 소비자 관심사에 '침묵'
대통령 지시·정부 방침에는 즉각 대응 지적
[세종=뉴스핌] 김명은 기자 = "소비자들은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할 것을 기대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장이 안 보여 되게 황당했다."
김명은 경제부 기자 |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0일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한기정 공정위원장을 향해 던진 말이다.
마일리지 공제율을 조정하는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개편안 시행을 앞두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상황인데도 약관 심사 권한을 가진 공정위의 수장이 함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면전에서 질타한 것이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에 대해서는 한기정 위원장 대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목소리를 냈다. 국토부는 항공 산업 주무부처이긴 하지만 사기업인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정책에 직접 간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원 장관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차원에서 연일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인 출신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원 장관이 '총대'를 멤으로써, 여론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컸을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소관부처 최고책임자의 침묵을 그냥 지나치긴 어려워 보인다. 소비자 정책을 담당하는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은 "대한항공 마일리지 제도에 대해선 국토부 장관이 앞장서서 (대응)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공정위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이번 사례 뿐만이 아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한기정 위원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들린다.
국회 정무위 소속 강병원 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올해 2월까지 열린 13차례의 전원회의 중 5차례 불참해 참석률이 62%에 그쳤다. 김상조·조성욱 전 위원장의 전원회의 참석률이 모두 90%를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직무상 이해충돌 때문이라고 하지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위원장이 평소 공정위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잘 내지 않아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공정위는 지난 1월 26일 금융위원회와 함께 해오던 그간의 관행을 깨고 법무부, 법제처와 함께 대통령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이날 업무보고 직후 3개 기관의 수장이 합동 브리핑을 했는데, 질문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만 일방적으로 쏟아졌다.
공정위 업무계획에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상향, 외국인 총수 지정 검토 등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은 현안들이 다수 포함됐지만 한 위원장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공정위는 경제부처가 아니고, 경제사법기관이 돼야 한다"고 말한 사실만 부각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경제검찰'로 불리던 공정위가 법무부의 세종시 출장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이 같은 의구심은 한 위원장의 또 다른 행보를 통해서도 품게 된다는 지적이 있다. 야당은 한 위원장이 대통령의 지시나 정부 방침에만 즉각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정위가 '카카오 먹통 사태', '금융·통신 분야 독과점 해소', '화물연대 고발', '조사·정책 기능 분리', '플랫폼 자율규제' 등에 유독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을 두고 한 야당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위에서 시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모두가 '스타 장관'이 될 필요는 없지만,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꺼내는 적극적인 장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dream78@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