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던 한 부장판사와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11시쯤 돼서 자리가 마무리됐는데, 이 부장판사의 발걸음은 집이 아닌 대법원으로 향했다. 이 부장판사에게 야근은 일상이었다.
바쁜 부장판사의 시간을 뺏은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대법원으로 걸어가는 부장판사를 지나쳐가는 길에 서울중앙지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간에도 중앙지검의 불은 절반 정도가 커져 있었다. 법원과 검찰은 이렇게 본인의 시간과 건강을 갈아가며 일하는 판·검사들에 의해 돌아간다.
과거엔 이런 일에 대한 승진이나 사회적 존경심 등 보상이 따랐다. 하지만 최근 법원·검찰이 구성원들에게 각 기관에 남을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앞서 언급한 부장판사와 같이 각 기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우수한 자원들이 시간과 건강을 갈아 넣을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사회부 김현구 기자 |
판·검사에게 연차는 '그림의 떡'이다. 보직에 따라 가족과 떨어져 몇 년씩 외지 생활을 해야 하고,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 동기들과 비교하면 수입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야근도 일상이다. 여기에 정치적 사건같이 주목도가 높은 사건을 맡게되면 강도 높은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판·검사는 국가의 자산이다. 수십 년간 쌓인 이들의 수사력, 재판 능력을 아랫세대로 자연스럽게 대물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는 다소 비정상적인 업무 여건에도 이들이 기관에 남아있을 명분을 만들어주고, 점차 개선될 것이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것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법판사 승진제 폐지, 로스쿨 도입, 법조일원화, 검찰개혁 등 수년간 진행된 '개혁'은 장점도 있지만 실제 운용 과정에서 많은 허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회의 '애프터서비스'가 없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법원·검찰 구성원들이 짊어지고 있다.
물론 이탈 인력은 다시 채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의 질적 저하는 피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수사·재판 지연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과 검찰은 모두 정원 증원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현재 국회의 우선 순위가 아닌 듯하다.
얼마 전 법원을 떠나 대형 로펌에 들어간 변호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변호사는 "수익 차이도 있지만 이제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는다는 것에 아내가 많이 좋아한다. 월급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며 다소 겸연쩍게 말했다.
대형 로펌의 업무 강도도 상당하다. 하지만 로펌은 현재 법원·검찰과는 달리 이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수입과 업무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가족이 있고 떠돌이 생활에 지친 판·검사들에게 '메리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판·검사도 사람이다. 이들에게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수입이 안 된다면 여건이라도, 여건이 안 된다면 명예라도, 명예가 안 된다면 비전이라도 제시해 이들에게 로펌과는 다른 '메리트'를 제공해야 한다.
법원과 검찰은 이미 수년째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국회가 나서 법조계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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