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성 개념, 법적 근거 없고 통상임금 범위 부당하게 축소"
고정성 개념 폐기하고 통상임금 개념·판단기준 재정립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대법원이 통상임금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개념적 징표로 사용된 '고정성' 개념을 폐기하고, 소정 근로 대가성을 중심으로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했다. 고정성 개념이 법령상 근거가 없으며,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19일 한화생명보험(한화생보) 근로자·퇴직자가 한화생보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하고, 현대자동차(현대차) 근로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는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한화생보 사건은 한화생보 근로자·퇴직자들이 재직 조건의 정기상여금에 대해 통상임금으로 주장하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어 재산정한 시간외 근무수당의 차액을 청구한 사건이다.
아울러 현대차 근로자들은 기준 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한 경우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지급제외자 규정이 부가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차를 상대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어 재산정한 연장근로수당 등의 차액을 청구했다.
한화생보 사건 1심은 재직 조건부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으며, 성과급 최소 지급분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은 "재직 조건의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정기상여금에 고정성이 인정되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현대차 사건 1·2심은 "지급제외자 규정이 무효라고 보기 어렵고, 15일 이상 근무조건의 성취 여부가 불확실해 고정성이 부정되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전합은 2013년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재직 조건이 있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여기서 사용된 고정성은 '임의의 날에 소정 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돼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이번 두 사건에선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판단할 때 종전 판례가 제시한 고정성 개념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계속 유지할 것인지, 유지하지 않는다면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결론적으로 전합은 종전 판례가 제시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하기로 하고,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기준을 재정립했다.
고정성 개념이 통상임금에 관한 정의규정인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을 비롯한 법령 등에서 근거가 없으며, 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해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며 "당사자가 재직 조건 등과 같은 지급조건을 부가해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의 강행성이 잠탈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통상임금은 소정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이므로 실근로와 무관하게 소정 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한다"며 "통상임금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통상임금이 법정수당 산정을 위한 도구 개념이므로, 연장근로 등을 제공하기 전에 산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즉 소정 근로를 온전히 제공할 경우 충족되는 근무 일수를 정한 근무 일수 조건부 임금은 통상임금이고, 소정 근로일수를 초과하는 근무 일수 조건부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기준급여의 850%를 연간 일정한 주기로 분할해 지급한 한화생보의 상여금, 통상임금의 750%를 연간 일정한 주기로 분할해 지급하는 현대차의 상여금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기준에 대해 "통상임금은 소정 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라며 "근로자가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