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력 강화 위해 2030년까지 11조 투입
미국·중국·EU 자본 투입 대비 부족한 현실
자본·인재·규제완화 등 생태계 전반의 보강 절실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대한민국은 이제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경제와 산업을 혁신하고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그러나 글로벌 AI 시장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앞다퉈 초거대 AI 모델을 개발하며 세계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반면, 한국의 AI 개발은 여전히 내수 시장에 머물러 있어 글로벌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정부는 지난 20일 제3차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열고 대규모 AI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연내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을 확보하고, AI 컴퓨팅 센터에 2조원을 투자할뿐더러 오는 2030년까지 총 11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AI 인재 양성을 위해 글로벌 AI 챌린지를 개최하고, AI 스타트업을 지원하겠다는 전략도 내놨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과연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을 선두에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 |
이경태 CTO |
정부가 강조하는 GPU 확보와 AI 컴퓨팅 센터 구축은 필요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AI 인프라에 수십조 원을 쏟아붓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산 AI 반도체 비중을 50%까지 늘린다고 하지만, 현재 한국 AI 반도체의 글로벌 경쟁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민간에서도 국내 대기업이 방관한 사이, 글로벌 공룡 IT 기업은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단순한 목표 설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먼저 정부는 2조원 규모의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을 발표했지만, 글로벌 AI 경쟁에서 보면 시작 수준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이에 화답해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수십조원을 투자해 초거대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인 AI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연합(EU)도 최근 AI 육성을 위해 총 2000억유로(약 300조원) 규모의 민간·공공자본 동원 계획을 공개했다. 그야말로 막대한 자본력의 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최근 '딥시크 충격'에 자본이 아닌, 두뇌로 이같은 경쟁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딥시크 거품론이 급부상하면서 자본의 중요성은 여전한 상태다. 국내 AI 전문가들 역시 11조원이 100조원 수준의 투자 없이는 경쟁에 뛰어들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인재 확보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AI 경쟁에서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AI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을 이끌어갈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최근 서울시가 연간 1만명의 AI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는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해외 AI 석학과 개발자를 유치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정부는 글로벌 AI 챌린지를 개최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몰려들 수 있도록 AI 연구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며, 연구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정책도 요구된다.
또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규제다.
AI 산업계에서는 여전히 규제 개혁을 외친다. 이번에 정부는 대규모 데이터를 AI허브와 공공데이터포털 등을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데이터와 사람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 대형의료병원은 환자의 비정형 데이터(손목 밴드 등)와 진료 기록을 종합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지만, 문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까다로운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진료 데이터와 다르게 비정형 데이터를 별도로 제3자가 보유하고 필요할 때마다 환자가 직접 해당 정보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서비스 자체를 만들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국제 기준에 맞춰 데이터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AI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진다.
또 한국의 AI 모델은 대부분 한국어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용도가 낮다. 이제는 다국어를 지원하고 글로벌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AI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형 챗GPT를 만들고자 한다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등 주요 언어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발에 당장 나설 국내 대기업이 한국어만 매달리게 된다면 결국 내수용 'AI' 개발에 그칠 수 있다.
더 나아가 글로벌 AI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사용자 경험(UX), 서비스 플랫폼, AI 비즈니스 모델까지 고려한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AI 강국들과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AI는 혼자서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글로벌 AI 강국들과 협력하며 기술을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공동 AI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IT 인프라, 5G 기술을 활용해 AI 생태계를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AI 핵심 기술과 생태계가 결합된다면 금상첨화이기 때문이다.
AI 혁신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다. 이번에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지만, 정작 중요한 요소인 데이터 규제 개혁, 글로벌 경쟁력 확보 전략은 미흡하다. 단순한 예산 확대가 아니라, 기업과 연구자들이 AI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조건을 열어줘야 한다. 당장 대표선수 선발해서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단기적인 발상도 다소 아쉽다.
과거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것처럼, AI가 이제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돼야 한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충분한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또 실현 가능성 없는 청사진만 제시한 것은 아닌지 반문해야 한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