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양섭 기자 =대선 전 여야가 공감했던 상속세 개편 논의가 새 정부 출범 이후 무산됐다. 제도 정비의 필요성엔 이견이 없었지만, 올해 세법 개정안에는 결국 담기지 못했다. '논란이 많고 준비가 덜 됐다'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부자 감세'라는 정치적 프레임과 더불어 '세수 부족'이라는 현실적 고민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더는 느긋하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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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속세 제도는 1997년 이후 사실상 손질 없이 이어져 왔다. '기회의 균등'이라는 이상적 가치 아래,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부자 감세' 논란이 제도의 유연한 조정을 막아왔다. 그러는 사이 서울 아파트 가격은 4~5배 넘게 뛰었다. 자산 구조와 인구 구성은 크게 변했지만, 상속·증여세는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과거에는 일부 자산가에게만 적용되는 세금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중산층도 상속·증여세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보유해도 상속·증여세를 고민해야 할 정도다. 증여세 역시 현실과 괴리가 있다. 직계 존비속 간 증여 시 면제 한도는 성인 자녀 기준 5000만 원, 미성년자는 2000만 원에 불과하다. 자녀 결혼이나 주택 마련 시기와 맞물리면 상당수 가계가 증여세 과세 대상에 놓이게 된다.
상속세는 자산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중장년층 이상의 고령 가구가 보유한 약 2800조 원 자산 중 8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구조다. 이처럼 유동화되지 못한 자산은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경제 전체의 활력도 떨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본의 해외 유출이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최대주주 지분 상속 시 20%의 할증이 붙어 실효세율은 60%에 달한다. 유능한 2세 경영인이 있어도 상속세를 감당하려면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기업이 적지 않다. 기업을 아예 매각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최근 7~8년 사이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했다. 기업 오너들이 기업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한 뒤, 증여·상속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자산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상속세가 없는 해외로 본사를 옮기거나, 해외 시민권을 검토하는 기업가도 늘고 있다. 로펌과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관련 컨설팅 시장도 확대되는 추세다.
상속·증여세는 분명히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산의 순환이 정체되고, 가업 승계가 단절되고, 자본의 해외 유출을 부추기는 배경이 된다면 제도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실용주의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자산이 합리적으로 이전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특정 계층을 위한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기반이다.
ssup8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