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서 개막작 선정
[부산=뉴스핌] 양진영 기자 = 3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한 시대와 가장의 몰락을 이야기한다. '어쩔수가없이' 반복되는 비극적 우화에 짙은 블랙코미디를 가미해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17일 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개막작 '어쩔수가없다'가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국내에서 최초로 상영됐다. 박찬욱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고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합류하며 동시대적 고민과 역설을 담은 수작의 라인업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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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사진=CJ ENM] |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가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아내 미리(손예진), 두 아이, 반려견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산산이 깨지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어쩔 수 없이 감행된 해고로부터 이어지는 '어쩔수가없는' 일들은 관객들에게 의외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불시에 터지는 웃음 속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병헌은 꽤 성공한 가장 만수로서 이룬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절박한 심경을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못나고, 측은하고, 어떤 때엔 지질하고, 결연하게 다짐하는 가장의 얼굴에서 관객들은 대부분 '웃픈(웃기지만 슬픈)' 감정을 마주한다. 하필 자신의 라이벌인 제지 업계의 전문가들을 차례로 상대하는 바람의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만수의 마음을 깊이 후벼파고, 사사건건 공감하게 되는 만수의 얼굴마저도 웃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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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사진=CJ E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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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사진=CJ ENM] |
만수의 아내인 미리 역의 손예진은 매력적이면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편의 든든한 우군이다. 의문의 면접을 다니는 남편의 수상쩍은 행적을 의심하지만 굳건한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미리의 아픈 손가락을 단단히 감싸주는 만수는 실직을 해도, 심지어는 범죄를 저질러도 지지해줄 수밖에 없는 가장이다.
만수의 첫 타깃인 범모 역의 이성민과 그의 아내 아라를 연기한 염혜란은 영화에 독특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자신처럼 실직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범모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만수에게 관객들은 매 순간 이입하다가도 변치않는 결심과 묵묵한 실행에 혀를 내두른다. 완전 범죄에 실패한 만수의 불안함을 잠재우는 아라의 뜻밖의 변화구도 이 영화가 가진, 박찬욱 감독만의 특별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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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사진=CJ ENM] |
'어쩔수가없다'의 제작에 참여한 모두는 극장의 관객수가 급감하고, 개봉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고 재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작 편수까지 급감한 영화계의 위기의 당사자다. 많은 이들이 영화 속 제지업계의 위기, 제조업의 몰락 빗대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쩔 수가 없는 정리해고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업계와 사회, 영화를 보는 모두의 것으로 확장된다.
박찬욱 감독은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아주 극단적이면서도 황당한 발상을 더해 '웃픈' 이야기로 풀어냈다. 한국 최고의 배우들이 진지하게 빚어내는 신들은 딱히 코미디를 의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엔 가벼운 웃음거리로만 소비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만수처럼 '어쩔 수 없이' 맞게 될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현실을 천천히 곱씹게 한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