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근의 부상으로 2, 3옵션 토종 공격수 부재
아시아쿼터 세터 도산지의 부진···중앙 활용도 전무
[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한때 한국 남자배구를 호령한 '명가' 삼성화재가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졌다. 어느 팀보다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올 시즌은 좀처럼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구단 역대 최다 연패 기록을 향해 미끄러지고 있다.
삼성화재는 1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시즌 V리그 3라운드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3(20-25 29-27 22-25 20-25)으로 패했다.

이 패배와 함께 삼성화재는 현대캐피탈전 연패를 10경기로 늘렸으며, 시즌 8연패를 기록하며 구단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을 적어냈다. 14일 열리는 우리카드전마저 패한다면 창단 이후 최다 연패라는 불명예까지 쓰게 된다.
2승 12패, 승점 7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는 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녀부를 통틀어 승점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는 팀은 삼성화재가 유일하며, 6위 우리카드(승점 15)와의 격차도 크게 벌어져 최하위 탈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삼성화재는 프로 출범 이전 실업리그에서 8연패를 차지하며 한국 배구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고, V리그에서도 원년 우승을 시작으로 2007-2008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7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머쥔 '왕조의 중심'이었다. 총 8번의 챔피언 등극은 여전히 역대 최다 기록이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들어 급격한 쇠퇴가 찾아왔다. 2017-2018시즌 정규리그 2위를 끝으로 팀은 7시즌 동안 봄 배구와 인연을 끊었다. 두 차례 꼴찌(2020-2021, 2022-2023)를 포함해 장기 침체기가 이어졌고, 조금씩 순위를 회복했던 최근 두 시즌의 흐름도 올 시즌 다시 무너졌다. 기대와는 달리 팀은 최하위로 떨어진 채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삼성화재가 이토록 고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외국인 선수 미힐 아히(등록명 아히)가 준수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 공격진의 화력 부족이 돌파구를 막고 있다.
아히는 14경기에서 297득점으로 전체 5위에 올랐고, 공격성공률도 52.22%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시즌 초에는 득점 1위에도 오르며 '에이스 역할' 자체는 분명히 해내고 있다. 문제는 아히 뒤에서 득점을 책임져야 할 국내 공격수층이다.
올 시즌 삼성화재의 2옵션은 김우진이다. 김우진은 188득점과 공격 성공률 47.77%로 리그 11위에 그쳤다. 유럽을 경험한 루키 이우진과 2003년생 이윤수는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당장 팀의 중심을 잡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
삼성화재 김상우 감독도 "김우진이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풀타임을 소화하는 건 사실상 처음인 만큼 부담이 크다"라며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래서 송명근의 부상이 더욱 뼈아프다. 삼성화재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신분(FA)으로 국가대표 출신 아웃사이드 히터 송명근을 영입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송명근은 시즌 개막 직전인 지난 9월 무릎 인대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복귀 시점은 빨라야 5~6라운드. 결국 팀의 공격 구상이 송두리째 흔들린 셈이다.
삼성화재의 또 다른 심각한 고민은 세터진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아시아쿼터로 영입한 204cm 장신 세터 알시딥 싱 도산(등록명 도산지)은 구단이 기대한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세트당 세트 7.96개는 리그 세터 중 유일한 한 자릿수 기록으로, 안정감 부족이 뚜렷하다.
도산지가 흔들릴 때 투입되는 노재욱은 만성 허리디스크가 발목을 잡고 있고, 박준서는 경험 부족이 드러나면서 세터 포지션 전체가 불안정한 상태다.
김상우 감독은 "세터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준비는 하고 있으나 실전에서 얼마나 버티느냐의 문제"라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공격의 한계뿐만 아니라 수비·세트플레이 등 팀 전반의 공백이 드러나고 있다. 경기 후반 리시브 흔들림이 반복되고, 미들 블로커 활용도 최저 수준에 머무르면서 속공 성공률과 블로킹 지표도 리그 꼴찌다. 중앙이 살아나지 않으니 상대 수비는 더 쉽게 삼성화재의 공격을 읽는다.
김상우 감독도 "우리가 어떤 선수가 들어가도 속공이 잘 나오지 않고 중앙 활용이 잘 안되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표출했다.
이런 흐름 속에 아히의 경기력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 11일 현대캐피탈전에서 김우진과 이윤수가 35득점을 합작했지만, 아히가 6득점(공격 성공률 28.6%)에 그쳤다. 최근 4경기에서는 모두 20득점 아래로 떨어졌다.

김상우 감독은 아히의 부진에 대해 "어떤 하나 때문에 흔들렸다고 보긴 어렵다. 준비는 많이 했는데, 현장에서 멘털이 많이 약해진 모습이었다. 오늘 김우진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서, 아히가 공격이든 블로킹이든 좀 더 도움 됐으면 훨씬 좋은 경기를 했을 텐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시즌 일정은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지금의 삼성화재를 둘러싼 분위기는 매우 무겁다. 국내 공격수 부재, 세터진 난조, 미들 블로커 활용 부족, 외국인 선수의 흔들림까지 겹치며 팀 분위기 자체가 가라앉아 있다.
반등이 필요하지만 당장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명가 재건'을 목표로 걸었던 삼성화재의 시즌은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wcn050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