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토요일 밤 그리스 총리가 유로존 탈퇴를 선언한다. 월요일, 그리스 국민들은 꼭두 새벽부터 은행 영업점 앞에 장사진을 친다. 은행의 예금자산은 이미 동결됐고, 영업점 문은 열리지 않겠지만 점점 더 많은 예금 고객이 몰려든다. 부활한 그리스 통화 드라크마는 유로 대비 60% 급락하고, 디폴트 선언에 따라 그리스의 해외 신용라인은 차단된다. 물가는 공포스럽게 치솟고, 분노한 시민들은 과격 시위를 벌인다. 순식간에 그리스는 패닉에 빠지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다.
지난주 EU 정상회의에서 신재정협약을 채택, 유로존 회원국을 보다 강한 연결고리로 묶으려고 한 것은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자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그리스를 포함해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떠안은 주변국 중 일부가 공동통화권을 탈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주장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주변국이 유로존에 머물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과 고통이 떠날 때 발생할 리스크보다 더 크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금융 전문가는 물론이고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시나리오를 구체화하는 움직임이다.
노무라는 새롭게 부활하는 드라크마가 60% 평가절하될 것으로 내다봤다. UBS는 통화 가치 급락은 물론이고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시민전쟁 발발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최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관련한 밑그림을 제시한 것은 프랑스 릴의 Ieseg 경영대학원 데릭 도르 교수다.
무엇보다 그는 그리스가 드라크마를 부활시키는 즉시 은행 예금 인출 및 해외 송금이 동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각종 백화점과 상점에는 중앙은행이 새로운 통화를 발행할 때까지 그리스에서만 통용되는 평가절하된 유로 결제 지시가 내려진다. 여행객에게는 그리스가 쇼핑의 천국이지만 국민들의 삶은 궁핍하기만 하다.
도르 교수는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위기 상황을 관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로존 탈퇴에 맞물린 법적 문제를 연구한 영국 법률가 찰스 프록터는 그리스 국내 법이 적용되는 국채를 보유한 투자자들이 평가절하된 드라크마로 원금과 이자를 받으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결국 디폴트로 귀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90%를 웃도는 그리스 국채가 국내 법망의 영향권에 속해 있어 투자자들의 피해가 상당할 전망이다.
프록터는 유럽 은행권이 강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600억유로 규모의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유럽중앙은행(ECB)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이 없으면 그리스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크게 평가절하된 통화와 자체적인 통화정책 통제를 근간으로 그리스가 경제성장을 회복할 여지는 더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다.
일부 소수의 그리스 경제학자는 이번 부채위기를 해소하는 유일한 해법은 유로존 탈퇴라고 주장한다.
판테이온 대학의 테오도르 마리올리스 이코노미스트는 50% 이상의 통화 평가절하가 인플레이션 없이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묘책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버드 로스쿨의 할 스콧 국제금융 전문가는 상이한 의견을 내놓았다. 드라크마가 부할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드라크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로 강세와 드라크마 하락이 진행되는 과정에 드라크마 투매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급격한 평가절하는 결국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프록터는 “단일 통화가 17개 국가의 경제를 모두 포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일부 국가는 국내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 유로존을 벗어나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