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어딘가 둔중하면서도 차분한 특유의 중저음 보이스가 상대를 매료시킨다. 어떠한 이야기에도 크게 동요되는 법이 없다. 시종일관 조금은 먹먹한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하며 매 순간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영화 ‘시선’ 개봉을 앞두고 마주한 배우 오광록(52)의 모습이 그랬다.
그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춤선생, 박사, 변호사, 교수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 그가 이번엔 세속적인 통역 선교사의 옷을 입었다. 영화 ‘시선’을 들고 대중 앞에 선 오광록은 이번 영화를 통해 깊은 내면연기를 선보이며 32년 내공을 마음껏 발휘했다.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 선언’ 등 198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름잡던 이장호 감독이 19년 만에 선을 보인 ‘시선’은 해외여행 중 피랍된 한구긴 9인이 생사의 갈림길에 내몰리는 과정을 그렸다. 극중 오광록이 연기한 조요한은 반군의 납치로 긴박한 상황에 놓이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사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관객이 편견 없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아무래도 소재상 반종교인, 반기독교인들이 불편하게 바라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영화적인 시선에서 보면 이장호 감독의 내공과 깊은 뚝심이 느껴질 겁니다. 편집의 완성도도 높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펼쳐낸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역시 훌륭한 작품이죠.”
사실 ‘시선’은 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지만 주연 배우 오광록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이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 때문이다. 3년 전, 함께 작품을 하자는 이 감독의 출연 제의에 그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이 함께 하자고 했을 때 정말 좋았죠. 어떤 작품을 찍게 될까,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고 설렜어요. 그런데 소식이 없기에 영화가 늦어지는구나 하고 잊어버렸죠. 그러다 지난해 봄에 연락이 온 겁니다. 시나리오 읽기도 전에 무조건 함께 하겠다고 했어요. 전 이번 영화가 종교를 떠나 지구 어느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풍경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적 시선으로 바라보니 종교적인 건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이번 영화를 탄생시킨 이 감독과 오광록의 첫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나고 영화인들과 함께 ‘별들의 고향’ 주막에 들렀던 오광록은 그곳에서 이 감독과 처음 만났다. 우연히 합석까지 한 두 사람은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막걸리를 마시다 보니 동이 텄어요. 감독님이 제 말투나 호흡법을 보고 ‘저 배우 독특하다’고 눈여겨봤다 그러더라고요. 관심이 생겨 제 영화도 몇 편 봤다셨고요. 좋게 생각해주니 고마웠습니다. 제 특유의 호흡과 엇박을 또 한 번 펼쳐보고 싶었던 계기였죠.”
이 감독은 오광록 특유의 말투에 매료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영화에서 그의 말투는 진하게 묻어나지 않는다. 되레 어딘가 조금 절제된 느낌마저 든다는 지적에 그는 “의도한 것”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많은 영화 속에는 다분히 영화적인 환상들이 있고 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위한 캐릭터화라는 작업이 존재해요. 근데 이 '시선'은 리얼리즘을 표방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익히 아는 제 말투를 쓰고 싶지 않았어요. 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요. 다큐멘터리 상황에 최대한 맞춰서 호흡을 담고 싶었습니다.”
의외일 수 있는데, 오광록은 시를 곧잘 쓴다. 주위에 따르면 실력 또한 수준급이다. 어린 시절 방학숙제였던 일기가 생활이 됐고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처음 시를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일기는 습작 시로 바뀌었고 자연스레 시인을 꿈꿨다. 물론 배우 생활을 하는 지금도 습작을 멈추지 않았다.
“20대에 연극을 할 때도 나머지 시간은 몇 개월씩 혼자 시를 쓰며 보내곤 했죠. 사실 그때는 다들 개성이 강하고 불꽃 같은 시절이었으니까 서로 자주 부딪혔어요. 그런 쓸데없는 힘들을 많이 소진해서 지쳤을 때 다시 나를 되돌아볼 수 있던 작업이 시였죠. 제 가슴에 있던 덥고 뜨거운 것들이 가을 첫 바람이 불어오는 날 툭툭 쓸려 나갈 때가 있어요. 그렇게 시 한 편 쓰고 나면 시원한 바람이 스친 듯 개운하죠.”
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그에게 시와 연기 중 어느 게 더 어려운지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연기가 조금 더 어렵다”며 웃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에게 연기의 의미나 가치가 덜한 것은 아니다. 시와 연기는 모두 오광록이 지난 시간 한결같은 에너지를 낼 수 있었던 소중한 원동력이다.
“인생은 돌이켜보면 항상 허점투성이죠. 최선인 줄 알았는데 아닌 느낌요. 20대 정말 치열하고 푸르렀을 때를 회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죠. 하지만 그때 봤던 세상을 아직도 몸으로 살지 못한 게 있잖아요. 그게 인생인 거처럼 배우도 마찬가지죠. 최선을 다했고 성취감도 있지만, 돌아보면 70점밖에 안 되는 거예요. 정말 그 참이 표현됐는가, 내 습관의 독들이 나를 훼방 놓고 있지 않았느냐는 거죠. 그리고 이 습관들을 쳐내는 게 시랍니다. 결과적으로 시와 연기는 유기적인 거라 생각해요.”
“크메르어 연기? 한국에서부터 공부해갔죠” “우선 한국에서 대본에 있는 대사하고 기본 회화를 연습해 갔죠. 아무래도 우리랑 딕션(발음)이 다 다르잖아요. 게다가 전혀 들어보지 않았던 언어, 듣기가 전혀 안 되는 언어라 걱정이었죠.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