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줄이 달린 안경을 쓰고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강남서를 뛰어다닌다. 상사에게 혼나서 울먹이기도 하고 범인을 잡았다고 기쁨을 포효하기도 한다. 귀여웠다가 안쓰러웠다가, 그의 행동에 시청자들의 마음도 함께 요동쳤다. 지난 두 달간 지국은 그렇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그간 영화 ‘파수꾼’(2011), ‘들개’(2013), ‘신촌좀비만화’(2014) 등을 통해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 박정민(27)이 SBS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너포위)로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물론 이미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지만, 상업적 성향을 띄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대다수 대중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었던 터. 하지만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연속 13주 1위’라는 명예를 얻으며 퇴장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드라마 종영 후 일주일 후 ‘너포위’ 속 지국, 박정민을 만났다. 트레이드마크 안경을 벗고 차분한, 그리고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마주한 그는 가장 먼저 공손한 인사를 건넸다. 지국을 떠나보내니 속이 시원하겠다는 첫인사에 그는 “주말을 한 번 보내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뭔가 서서히 연결됐던 느낌이 잦아드는 듯하다”며 웃었다.
“전에도 작품을 했지만 사실 절 알아보시는 분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가 끝난 지금 흔히 스타라고 불리는 연예인들처럼 길거리를 지나다니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죠(웃음). 그래도 이렇게 많이 알아봐 주시니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물론 무엇보다도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좋은 사람들과 4개월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게 저로서는 가장 감사하고 의미 있는 일이고요.”
극중 박정민이 열연한 지국은 강력 3팀 신입 형사, 수사에 관심도 재능도 없지만 순수하고 밝은 성격을 지닌 강남서의 분위기 메이커다. 하지만 박정민과 대화를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지국과 완전히 상반된 성향을 가졌음을 알아챘다. 그는 결코 지국처럼 엉뚱하거나 능청스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꽤 진지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지국을 저리도 맛깔나게 표현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사실 지국을 표현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웠어요. 나와 비슷한 인물도 아니고 반대의 사람을 만나서 동화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초반에 많이 부딪혔죠.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니 지국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지국은 박정민이란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이해가 안 되니까 과장으로 부풀리려고 했고요. 애매하게 하면 걸릴까 봐 덮으려 한 거죠. 그래서 목소리, 말투, 행동, 걸음걸이까지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확실히 힘들더라고요.”
물론 지금 생각해도 혀를 내두를 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용케도 박정민은 모든 순간을 이겨냈고 지국 캐릭터를 제대로 살렸다. 그는 “여기에는 분명 함께 연기한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작품에서 성지루, 차승원, 서이숙, 임원희 등 선배 배우들과 함께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간 또래 연기자들과 줄곧 호흡을 맞춰왔기에 다소 낯선 환경이었지만, 확실히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선배들에게 많이 기댔어요. 사실 전 성격상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살가운 스타일이 아니에요. 뭐든 혼자 해결하려는 성향이 좀 있죠. 근데 너무 힘들다 보니까 선배들에게 기대게 되더라고요(웃음). 다행히 선배들이 너무 잘해주셨죠. 그러다 보니 현장이 즐거워졌고 먼저 다가가게 됐어요. 그때 느꼈어요. 제 마음이 닫혀있었다는 걸. 아무튼, 이런 시행착오들 덕에 발전한 계기가 된 건 확실하죠.”
이제 지국의 성장통은 끝났다. 하지만 배우 박정민은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고, 또 이겨내고 있다. 지난 2011 영화 ‘파수꾼’으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지 어느덧 3년, 그는 요즘 자주 과거와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자신을 정확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돌아보고 준비할 줄 알기에 그의 고민은 충분히 가치 있어 보인다.
“‘내가 과연 잘해왔나? 그렇다면 앞으로는 잘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죠.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와 환경에 대한 고민이고요. 나름대로 공연도 만들고 연기하며 살아왔잖아요. 돌이켜 봤을 때 데뷔하고 그동안 쌓아온 게 단단한 나무 기둥 같진 않더라고요. 빈 구멍이 너무 많은 거죠. 더군다나 30대가 다가오면서 조금씩 안정에 대한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현실감이 막 솟구치면서(웃음). 근데 전 진짜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거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꾸준히 하면서 존경하는 선배들처럼 믿고 보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아~ 쟤 연기 정말 연기 잘한다’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듣는 날이 오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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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