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승현 기자] # 최근 한 건설공사 현장에서 안전관리자로 근무했던 A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공사기간(공기)이 당초 5년으로 책정돼 5년 계약을 맺었는데 공기가 10년으로 길어진 것. 그러나 기존에 책정됐던 10억원 규모 안전관리비는 한 푼도 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전관리비 대부분은 안전관리인력 인건비로 쓰여 안전시설이나 안전관리를 위해 경보 장치와 같은 장비구입에 사용할 비용이 턱없이 부족했다.
건설공사 현장사고를 막기 위한 '병참'인 안전보건관리비가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안전관련 비용을 ‘쓸데없는’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공기가 늘어나도 안전관리비는 늘지 않는다.
안전보건관리비는 안전보건 관련 인건비나 시설비, 교육비에만 써야 하지만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자체공사에서는 발주자가 서류만 꾸며 안전보건관리비를 타용도로 전용하는 것도 적지 않다는 게 건설현장의 목소리다.
2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전체 공사에 책정된 안전보건관리비는 25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2013년은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시기라 주택시장이 다소 살아난 올해는 3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공사 발주자는 고용노동부장관 고시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도급금액 또는 사업비에 계상해 산업재해 및 건강장해예방에 사용하고 명세서를 작성해 보존해야 한다. 안전관리비는 ▲안전보건관리자 인건비 ▲시설비 ▲장비구입비 ▲안전진단비 ▲교육비 ▲건강관리비 ▲기술지도비 총 7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지난 2005년까지는 각 항목별로 금액을 책정해 그에 맞춰서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효율성 문제로 2005년 규정이 변경돼 지금은 전체 안전관리비 범위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인건비에 얼마 써라 교육비에 얼마 써라 등을 법령으로 구분해 놓으면 오히려 효율적인 집행이 어렵다”며 “어떤 항목은 안 남게 하기 위해 무리하게 쓰기도 하고 어떤 항목은 써야하는데 모자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안전관리비용의 많고 적고를 떠나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안전관리비를 ‘쓸데없는 비용’으로 생각하는 우리 건설업계의 인식 때문이다. 건설기업노조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전체 공사비용 항목 가운데 자의적 판단으로 가장 많이 줄이는 비용이 바로 안전관리비용이다.
특히 발주자가 자기 건물을 짓는 민간 자체공사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다. 감리와 모니터링이 어느정도 확립돼 있는 관급공사와 달리 자체공사는 완전한 자기 사업이다 보니 발주자가 가장 먼저 줄이고 싶어하는 비용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안전교육은 형식적으로만 실시하고 안전시설도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공사 기간을 단축해 저가 수주 비용을 만회하려다 보니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와 함께 건설기업노조는 안전관리비용을 공정하게 집행하기 위해 현장 노사협의회에서 심의를 거쳐 이를 집행하고 사용내역을 검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건설기업노조 관계자는 “이번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사고 문제로 지적되는 점들도 가스 측정 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것과 경보음이 작동하지 않는 등 안전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만약 이것이 주된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어떤 원인으로든 안전관리비가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인력 문제 등으로 모든 현장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지적들이 들려오고 있지만 20만개 사업장을 250명 수준의 직원들이 꼼꼼히 살피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현재 주어진 여건 속에서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찰가에 따라 안전관리비가 감소하는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공공사 수주를 위해 공사비를 줄이다보면 안전관리비도 함께 줄 수밖에 없어서다.
현행 법규에 따라 안전관리비는 대상액(설계가기준) x 요율 x 낙찰율로 산정한다. 노조는 대상액(설계가에 위험공종 반영이 포함된 기준) x 요율로 개선되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기업노조 관계자는 "저가 수주를 하더라도 안전관리비는 정액으로 해 줄어들지 않고 보존되도록 입낙찰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승현 기자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