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등 당국 "개인 소유물이라 문화재 지정 못했다"
국보급 보물 '관리 사각지대'...도난 1년6개월 지나 파악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도난 당한 세종대왕 친필 문서(9월 6일자 보도)가 발견 10년이 넘도록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 등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면받은 ‘세종대왕 친필 문서’
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세종대왕의 친필 문서 ‘세종어제친필’은 정부의 관리·감독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은 비지정문화재다. 세종어제친필은 지난 2005년 개인 소장자 A씨와 고(故) 천혜봉 전 문화재전문위원을 통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까지는 세종대왕이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이정간에게 내린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이라는 여덟 자의 어필(御筆) 모각본 정도만 전해져 왔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이를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도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세종어제친필이 개인 소유물인 데다 학계에서 진품 여부를 가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문화재로 지정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국보급 보물의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자료가 정부의 감시망 밖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도난까지 당한 것이다.
도난 당한 '세종어제친필'의 실제 모습 [사진=문화재청] |
문화재청은 세종어제친필의 도난 사실을 사건 발생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파악했다. 이 때문에 세종어제친필이 이미 암거래상에게 팔렸거나 국외로 반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종어제친필은 학계에서도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높다고 보는 사실상 ‘백지수표’나 다름없다. 사정이 이렇지만 문화재청은 자취를 감춘 세종어제친필의 꼬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제도권에서 관리만 됐더라도..”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유물 등을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문화재의 소유자가 개인이더라도 문화재로 등록되면 해당 문화재의 소재지가 변경되거나 도난당하면 지자체와 문화재청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문화재에 변동사항이 있을 경우, 개인 소유자가 지자체와 문화재청에 이를 신고하도록 명시한 문화재보호법 일부. 도난 당한 세종어제친필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다가 지난해 도난 당했다. [사진=법제처] |
현재 개인 소유물을 문화재로 강제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지만, 문화재청이 이를 사들이거나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도록 소장자를 설득할 수는 있다. 해당 소유물은 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재산권 행사 등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오히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감정가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소장자가 먼저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학계는 세종어제친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진품 여부를 연구해왔다. 처음 발견된 세종대왕 친필 문서인 탓에 비교 자료가 부족해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데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학계는 현재 세종어제친필이 진품이라는데 의견을 모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품 판정 이후 문화재청이 문화재 지정에 발 빠르게 나섰더라면 도난을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세종어제친필은 소장자 A씨의 신고로 현재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세종어제친필이 큰 가치가 있다고 해서 개인 소유물을 함부로 문화재로 지정할 수는 없었다”며 “소장자를 설득해서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권고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대왕의 친필 문서를 소장하고 있던 A씨는 지난달 24일 “연구목적으로 지인에게 세종어제친필을 빌려줬다가 도난 당했다”고 문화재청에 신고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