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봉덕리1호분·나주 정촌고분 출토된 금동신발
백제 공예문화의 진수·원형 보존 상태 훌륭…역사적 가치 높아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삼국시대 금동신발 2건이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금동신발' 2건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16일 밝혔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둘 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이들 금동신발들은 모두 백제 5세기에 제작됐으며 삼국 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그동안 삼국 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상당수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사진=문화재청] 2021.02.16 89hklee@newspim.com |
금동신발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에 위치한 4기의 대형 분규묘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여기에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됐던 것이다. 이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장례 때 의례용으로 사용된 신발로 백제 시대의 전형적인 형태와 문양을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이다.
금동신발의 전체 형태를 보면 발목깃을 갖춰 앞쪽은 뾰족하면서도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고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투각(무늬 나타내는 조각 기법)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 괴수,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됐다. 신발 바닥에는 1.7cm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고창 봉덕리 1호분 금동신발 발굴 모습 [사진=문화재청] 2021.02.16 89hklee@newspim.com |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삼국 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약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이며,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돼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스파이크)을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으로 추정된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삼국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것이다. 5~6세기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복암리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됐는데 그 중 정촌고분은 1500여년 전 백제·마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이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아 매장의 원형을 알 수 있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무덤이다.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됐으며, 특히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에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수행한 과학적 분석 결과 신발의 주인공이 40대 여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이 금동신발은 형태와 제작기법, 문양 등에서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신발과 매우 유사하다. 얇은 금동판 4장으로 바닥판과 좌우 옆면판, 발목깃판을 만들어 서로 작은 못으로 연결했고 문양을 투각해 세부를 선으로 묘사한 방식 등 고대 금속공예 기법이 잘 반영돼 있다. 아울러 육각문, 용문, 인면조신, 괴수문, 연화문 등 사후영생을 기원한 고대인들의 사후세계관이 반영된 듯한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돼 있어 조형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2종은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시기 중국이나 고구려, 신라의 미술품과 비교해 문양의 기원과 변천,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 시대 금동신발과 비교해 백제 공예문화의 독자성을 밝힐 수 있는 원천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등 2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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