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보고가 늦은 것을 인정한다"
서울 강남 주택가에서 40대 여성이 납치돼 살해된 사건에 대해 경찰청은 이같이 입장을 밝혔다. '늑장 대처'에 대한 경찰의 인정은 생각보다 빨랐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났고 112신고도 됐지만, 사건의 면면에서 초동 대처의 미흡함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회부 이정윤 기자 |
경찰은 사건 발생 후 5시간이 지난달 30일 오전 4시 57분 전국에 공유되는 수배차량검색시스템(WASS)에 납치 차량을 등록했다. 차량 번호를 인지한 시점보다도 4시간여 뒤다. 결국 WASS에 등록되고 나서야 당일 오전 6시를 넘어 대전을 빠져나가는 차량을 포착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야간의 경우 해상도가 낮고 시스템 인식률 자체가 떨어진다"는 다소 원론적인 해명을 내놨다.
수배 입력이 필요할 경우 평일 낮에는 부서장 승인이 필요하지만, 심야시간대엔 경찰서 상황관리관이 사건 담당자의 요청으로 등록할 수 있다. 사후 보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의 늑장 대응은 이걸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피해자가 암매장될 때까지 경찰 지휘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휘부 보고와 상황 전파가 늦은 것이다.
백남익 수서경찰서장은 같은 달 30일 오전 7시 2분쯤 유선을 통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7분 앞선 6시 55분쯤 문자를 통해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7시간이 지나 늑장 보고된 탓에 피의자들이 납치·살해에 이어 시신 암매장(오전 6시)을 끝낼 때까지도 지휘부는 까맣게 몰랐다.
납치·실종 사건은 '골든타임'이 있는 만큼 경찰의 초동 대응이 얼마나 빠르고 강력한지가 중요한데, 이번 사건에서는 경찰의 늦장 대응으로 인해 결국 피해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건을 접한 한 전문가는 "디지털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데 경찰은 여전히 결재하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기자에게 토로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경찰이 늑장 대응으로 인해 고개를 숙인 모습은 낯설지 않다. 불과 지난해 11월 윤희근 경찰청장은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고 판단했다"며 '이태원 참사' 전후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경찰의 '빠른 인정'만이 문제 해결의 능사는 아니다.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과감히 내부 보고체계를 손질하고 과학수사, 수사능력 강화 등 근본적인 경찰 시스템의 변화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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