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각본으로 피해자 통제...자의적으로 벗어나기 어려워
"전화 끊는 게 최선…수사기관, 특정장소서 조사받게 안해줘"
[서울=뉴스핌] 고다연 기자 = 전화로 검찰 등을 사칭한 뒤 숙박업소 '셀프감금'을 유도해 돈을 편취하는 범죄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다. 이 범죄의 핵심은 범죄 조직의 치밀한 각본 하에 피해자가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상태에 놓여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가두게 된다는 점이다.
뉴스핌 취재에 따르면 30대 직장인 김지수 씨(가명)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지난달 18일부터 14일간 호텔에서 '셀프감금' 상태로 지냈다. 김씨는 전재산 9500만원을 보이스피싱범들에게 송금했다. 김씨가 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들어준데에는 '가스라이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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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화로 검찰 등을 사칭한 뒤 숙박업소 '셀프감금'을 유도해 돈을 편취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뉴스핌 DB] |
김씨는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14일 동안 보이스피싱임을 눈치채지 못한 이유를 '가스라이팅'으로 짚었다. 김씨는 "그 사람들이 그냥 몰아붙이는게 아니라 중간중간 '좋은 아침입니다', '식사 챙기세요', '동생과 사이가 좋아 보여 보기 좋다' 등 좋은 말도 해준다"며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스라이팅 유형이 선량한 것과 강압적인 것이 있는데 사기 범죄는 둘 다 쓴다"며 "이게 더 전략적으로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강압적으로 굴다가 친절하게 구는 등 (행동을)섞으면 예측이 불가능한데 사람 심리라는게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또"특히 고립된 방에 있으면 감각도 박탈된다"면서 "이 상태를 자의적으로 벗어나는건 굉장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에도 대전에서 보이스피싱 수법에 당한 20대 여성이 20여 시간 모텔에서 머무르다 경찰의 도움으로 구출됐다. 최근에도 경기 군포에서 모텔 운영 업주가 투숙객을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의심해 신고 끝에 피해를 막은 사례가 알려졌다. 김씨가 피해 내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한 이후에도 비슷한 수법을 경험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경찰 역시 해당 유형을 인지하며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신종 피싱 범죄인 '셀프감금 보이스피싱' 예방활동에 나섰다고 밝혔다. 서울 서·북동권 모텔과 숙박업소 30여 곳을 방문해 업주 및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피해 사례를 안내하고 대학 캠퍼스 및 SNS를 통한 범죄 예방 활동에도 나섰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그렇게 특정장소로 이동해 조사받게 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들 "비상식적이고 무리한 요구 경계...신종 유형 경각심 가져야"
보이스피싱 수법이 진화하는만큼 신종 유형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판단을 순간적으로 하는게 쉽지는 않지만 비상식적이고 무리한 요구하는 전화는 일단 응하지 않는게 필요하다"며 "일단 몇 마디 듣다 보면 심리적으로 제압되니까 그 상황에서 스스로 헤쳐나오거나 주위 도움 요청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런 종류 범죄는 수사하기 어려운데 범죄자들 입장에서는 노력 대비 성공만 하면 큰 돈을 얻을 수 있으니까 계속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역시 "끊는게 제일 좋다"면서 "수사기관이 그렇게 고압적으로 굴거나 특정장소에서 조사받게 해주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런 보이스피싱 유형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될 때는 근처 경찰서를 방문하거나 대검찰청이 운영하는 '찐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보내는 서류의 진위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을 감지하는 통신사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에는 '법원에서 온 등기가 있다'며 연락하는 보이스피싱 사례가 늘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
gdy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