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재해석, '외모 강박' 날카롭게 풍자
노르웨이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 연출작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동화 속 신데렐라는 계모의 학대를 받던 착한 성품의 소녀다. 어느날 요정의 도움으로 궁중 무도회에 나가서 왕자를 만난다. 신데렐라는 마법이 풀리는 자정 시간에 쫓겨 도망치듯 떠나다가 유리 구두 한 짝을 남겨 놓는다. 이 유리구두가 인연이 되어 왕자를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신데렐라를 학대하던 계모 레베카는 못생기고 심술궂은 두 딸을 무도회에 보내서 왕자와 연을 맺어보려 하지만 신데렐라에게 그 기회를 뺏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콩쥐팥쥐전' 역시 '신데렐라'와 흡사한 이야기 구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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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어글리 시스터'. [사진 = 플레이그램] 2025.08.19 oks34@newspim.com |
노르웨이 출신 신예 감독인 에밀리 블리히펠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어글리 시스터'는 블랙 코미디를 지향하는 바디 호러 영화다.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하지만 '어글리'하게 비틀었다. 이 때문에 다소 과한 영상과 표현이 넘쳐난다는 점을 숙지하고 봐야 한다. '어글리 시스터'의 주인공은 신데렐라가 아닌 계모의 딸 엘비라(레아 미렌 분)이다. 못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왕자와 결혼하겠다는 꿈을 품고 산다. 아름답고 우아한 신데렐라(극중 이름 아그네스)도 등장하지만 '재투성이 착한 소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집안의 말을 돌보는 마부와 눈이 맞아 계모로부터 학대를 받는다.
영화의 핵심은 왕자를 쟁취하기 위한 엘비라의 피나는 노력이다. 중세 유럽의 무지막지한 의술이 동원되어 성형에 나선다. 코를 망치로 내리쳐서 세우고, 눈꺼풀에 속눈썹을 만들기 위해 바늘로 꿰맨다. 또 다이어트를 위해서 촌충(조충)의 알을 삼켜 몸 안에서 기생충을 키운다. 엘비라의 엄마도 정상은 아니다. 신분상승과 부(富)를 위해 귀족의 재취로 왔지만 새 남편은 급사하고, 그 가문에 재산 대신 빚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유일한 탈출구는 딸을 왕자와 결혼시키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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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어글리 시스터'. [사진 = 플레이그램] 2025.08.19 oks34@newspim.com |
영화에 등장하는 왕자도 동화 속의 왕자와는 거리가 있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듯한 외모에 자기 주관이라고는 없다. 말과 행동이 저급하면서도 폭력적이다. 신데렐라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구두 주인 찾기' 장면이다. 엘비라는 자기 발보다 한참 작은 신데렐라의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칼로 발가락을 내리친다. 이를 악물고 제 발을 내리치지만 잘 끊어지지 않자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딸보다 더 지독한 어머니는 과감하게 딸의 발에 칼질을 한다.
북유럽의 우아한 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역겹기까지 한 이야기지만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이 신인 감독은 아름다움을 위해 신체를 변형하는 행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작금의 현대 사회는 좀더 세련되고, 뛰어난 방법으로 '인공미'를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 숨은 폭력성과 욕망은 지울 수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 때문에 동화 속의 해피엔딩은 이 영화에서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아름다움이 권력이 되는 잔혹한 경쟁의 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스스로 구렁텅이에 처박힌 최고 권력자의 부인과 장모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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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어글리 시스터'. [사진 = 플레이그램] 2025.08.19 oks34@newspim.com |
덴마크 출신의 의상 디자이너, 폴란드를 배경으로한 성과 수도원 촬영지 등 영화 전체에 북유럽 감성이 가득하다. '어글리 시스터'는 선댄스영화제 등 세계 20여 개 영화제에 초청되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 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20일 개봉. 109분. 청소년 관람 불가.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