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16일(현지시간) 유럽이 행동하지 않음(inaction)으로 인해 경제적 경쟁력이 퇴보하고 있으며 미국·중국 등 글로벌 경쟁자들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주최로 열린 'EU 경쟁력 강화 보고서' 발간 1주년 기념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1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그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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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렵연합(EU) 본부에서 열린 행사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EU 집행위는 지난 2023년 9월 드라기 전 총재에게 유럽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고, 드라기 전 총재는 작년 9월 9일 383개의 권고안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다.
EU 집행위는 드라기 보고서를 유럽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주요 로드맵으로 채택했지만 현재까지 권고안의 일부만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194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드라기는 2011~19년 ECB 총재를 역임한 뒤 2021~22년 이탈리아 총재를 지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날 "우리의 성장 모델은 시들해지고 있고 취약성은 커지고 있다"며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서 경쟁력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권 자체도 위협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느림(slowness)에 너무나 자주 변명이 제기된다"며 "EU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기력함이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으로 포장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그저 안주(complacency)에 불과하다"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이 경쟁력 강화 의제를 추진하는 데 긴박함이 부족하다"고 인정하며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단일시장(EU)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며 "유럽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보다 바다 건너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더 쉬워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유럽 안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로 나가는 것보다 더 쉽고 경쟁력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싱크탱크 유럽정책혁신위원회(EPIC)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드라기 보고서가 내놓은 권고안 중 실제로 실행에 옮겨진 것은 11.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럽 경제가 답보 상태를 계속하면서 올해 2분기 경제 성장률은 미국의 8분의 1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의 관료들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EU 각국 지도자들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회피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계속 관여하도록 하고, 중국과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유럽의 시민과 기업들은 점점 더 큰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며 "그들은 EU의 움직임이 너무 느리다는 점에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이 미국과 중국 등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