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그는 서른 두번째 생일을 맞지 못했다. 살아서는 미국 보수의 젊은 아이콘이었고 죽어서는 극우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
찰리 커크의 생은 거의 항상 미디어의 중심에 있었다. 생전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는 530만명에 달했고, 300만명 넘는 사람들이 그의 유튜브 구독자였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2012년 열여덟 살의 나이에 보수 청년단체 '터닝포인트 USA(Turning Point USA)'를 설립해 미국의 청년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라났다.
뉴미디어를 통해 증폭된 커크의 영향력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도 큰 도움이 됐다. 그를 떠나보낸 트럼프의 추모사는 웅장했다. 21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트럼프는 재차 그를 미국 보수의 가치를 전도하다 극좌 세력의 흉탄에 숨진 "순교자"로 기렸다.
커크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범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은 커크보다 아홉 살 어린 22세 청년이다.
체포 전까지 유타주 딕시 기술대학(Dixie Technical College)에서 전기 기술 견습 프로그램을 이수중이던 학생(3학년)이었다. 로빈슨의 부모는 공화당원이지만, 로빈슨이 특정 정당에 가입한 기록은 없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살인 동기는 미국 언론에 알려진 검찰 조사 내용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증오로 가득찬 커크의 발언들이 증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유력한 살해 동기다.
실제 커크의 입은 거칠었다. 강경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이민자와 성소수자, 이슬람교도, 그리고 유색인종을 향해 차별적이고 증오를 조장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이 험하다는 게 죽임을 당할 이유일 수는 없다.
커크의 죽음 이후 공화당 내부에서도 증오의 정치, 극단의 정치를 경계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적(?)을 향해 좌표를 찍기 바쁜 트럼프에 막혀 큰 울림을 낳지는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21일) 추모식에서도 커크 암살의 책임을 급진좌파에 돌리며 그 세력을 뿌리 뽑는 데 헌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죽은 커크를 대신해 '찰리커크 쇼(커크가 진행하던 팟캐스트)'를 진행한 JD 밴스 부통령 역시 "정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좌파 테러리스트 조직을 식별해 파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좌파 낙인은 그들의 관세 정책 만큼이나 자의적이고 일방적일 위험이 높다. 그렇게 커크의 죽음은 마가(MAGA)의 메카시즘화를 재촉하는 축문이 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 스스로를 돌아볼 값진 유산을 남겼지만, 유족 중에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 증오라는 '괴물'이 두 청춘을 집어삼켰지만 미국의 정치는 이해타산에 여념이 없다. 자신의 생이 그렇게 끝날줄 알았다면 커크의 삶은 이전과 달랐을까. 로빈슨은 자신의 암살이 커크 숭배와 우파 결집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을까.
유럽과 미국 안에서는 '꾸역꾸역 밀려든 난민과 이민자가 지역사회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계치로 몰아간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그들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민·난민 문제의 최소한 일부 아니 어쩌면 상당부분은 그들(선진국들)이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제 3세계에서 자행한 대리전(戰)의 파생물이다. 누군가의 터전을 파괴한 결과, 자신의 터전이 위협받는 업보인지 모른다.
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20대의 분노는 계층 상승 기회의 실종(사다리의 실종)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는 2차 대전으로 파괴된 부(富)가 재구축되는 과정에서 삼대(三代)를 지나는 동안 부와 가난의 세습이 세계 곳곳에서 양극단적으로 심화하기만 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직업 세습까지 두드러지고 있어 상대적 박탈과 좌절감은 더 커지고 있다.
현실 정치는 이 복잡계의 일들을 차근차근 풀어 낼 재능과 의지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누적된 적개심과 응어리를 배설하고픈 유권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충족하고자 그들(정치인)이 가리키는 손끝은 '아주 빈번하게' 사악하기 짝이 없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거칠게 부려야할 머슴이지, 팬덤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우상에 경도되었을지 모를 나를, 편견과 단견에 사로잡혔을지 모를 나를 의심하고 남의 입장이 되어볼 때 '괴물'은 사라지고 대화가 복원된다. 그 괴물이 걷잡을 수 없이 자랐을 때의 참상이 어떠한지는 아버지들의 아버지가 기억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을지 모를 그들의 기억은 흑백 다큐멘터리 필름 속에 생생하다. 우리의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소환해야할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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