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급락·엔화 강세… 안전자산으로 쏠림
트럼프의 관세 폭탄 이후… 이어지는 청산의 악순환
'고래'의 숏 포지션… 내부정보 의혹까지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비트코인이 14일 중국의 대미(對美) 무역 보복 조치의 여파로 11만2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과 중국이 잇달아 강경 발언을 내놓은 가운데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고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암호화폐 시장 역시 다시 위험자산으로서의 민낯을 드러냈다.
한국 시간 오후 7시 20분 기준 비트코인(BTC) 가격은 24시간 전에 비해 3.6% 하락한 약 11만782달러, 이더리움(ETH)은 5.1% 하락한 3940달러 부근에서 거래됐다. BNB는 1191달러로 9.3%, 솔라나(SOL)는 193달러로 1.3%, 도지코인(DOGE)은 0.19달러로 6.2% 하락했다. 전체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약 3조9000억달러로, 여전히 폭락 전보다 6% 낮지만 저점 대비는 4.4% 증가했다.
이날 앞서 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자 전 세계 투자심리가 급랭했다. 불과 며칠 전 미·중 양국이 '자제'를 시사한 직후였던 터라, 무역 갈등이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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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2025.10.14 koinwon@newspim.com |
◆ 증시 급락·엔화 강세… 안전자산으로 쏠림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장중 3% 넘게 떨어지며 약 두 달 만의 최악의 장을 기록했다. 미국 주요 주가 지수 선물과 유럽 증시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엔화는 달러 대비 강세로 전환됐고, 금·은은 오후 들어 매도세에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4.03% 부근까지 떨어지며 안전자산 선호 흐름이 두드러졌다.
암호화폐 시장은 이런 위험회피 흐름을 그대로 반영했다. 투자자들은 다시 현금화에 나섰고, 레버리지 포지션이 대거 청산됐다.
◆ 트럼프의 관세 폭탄 이후… 이어지는 청산의 악순환
이번 하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중국산 수입품에 100% 관세 부과를 경고한 이후 이어진 변동성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하루 만에 200억달러 규모의 포지션이 청산되며 사상 최대 규모의 '강제 청산 사태'가 발생했다. 주말 사이 잠시 반등했지만 주 초반 다시 낙폭을 키우며 일요일 저점 대비 약 4% 상승에 그쳤다.
다만 미·중 양국이 주말 사이 강경 발언 수위를 낮추며 시장은 '패닉'에서 '불안한 낙관'으로 전환됐다. 중국 상무부는 희토류 수출 제한이 전면 금지 조치가 아니라고 해명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미국은 중국을 돕고 싶다"고 발언해 진정 시그널을 보냈다. 그 여파로 미국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이 소폭 반등했다.
◆ "공포에서 불안한 낙관으로"… 시장 심리 소폭 개선
투자심리도 다소 개선됐다. 암호화폐 공포·탐욕 지수는 12일의 24(극단적 공포)에서 38로 반등했다. Fx프로의 알렉스 쿠프치케비치는 "이번 급락은 관세 뉴스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강제 청산을 유발한 기술적 이벤트"라며 "이런 폭락은 단기 바닥 신호일 수 있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차트상으로는 여전히 하락 압력이 뚜렷하다. 비트코인은 단기(50일)와 중기(200일) 이동평균선을 동시에 밑돌며 기술적으로 약세 국면에 진입했다. 통상 50일선은 단기 투자심리, 200일선은 장기 추세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여겨지는데, 두 선 모두 하회했다는 것은 단기 반등세가 힘을 잃었고 장기 상승 흐름 또한 꺾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비트코인은 2017년과 2021년의 고점을 연결한 핵심 장기 추세선을 세 번째 시도 끝에도 돌파하지 못했다. 이 선은 과거 두 차례의 대세 상승기 정점을 잇는 저항선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이번 상승 사이클의 상단'으로 인식하는 구간이다. 코인데스크는 이를 "이번 사이클에서 강세장의 한계를 가르는 전장"이라고 표현하며, 이 선을 돌파하지 못하면 추가 상승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기술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월간 MACD(이동평균수렴·확산지수) 히스토그램이 점차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상승세의 속도가 둔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상 MACD 히스토그램이 감소하면 매수세가 약해지고 모멘텀이 약화되는 신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경우 비트코인이 단기적으로 10만달러 부근까지 조정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10만7000달러(200일선)를 단기 지지선으로, 12만1800달러를 돌파해야 하락 추세가 무효화될 것으로 본다.
◆ '고래'의 숏 포지션… 내부정보 의혹까지
시장을 더욱 긴장시킨 건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에서 등장한 정체불명의 고래(큰손 투자자)다. 지난주 트럼프의 관세 발표 30분 전에 비트코인을 대규모로 공매도해 1억9200만달러의 이익을 거둔 뒤, 이번엔 1억6300만달러 규모의 숏 포지션을 새로 열었다. 포지션은 10배 레버리지로 설정돼 있으며, 이미 350만달러가량의 평가이익을 기록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 투자자가 내부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하이퍼리퀴드는 세계 최대 탈중앙화 파생거래소로, 자동 디레버리징(ADL) 시스템을 통해 손실 계좌의 부채를 상쇄하지만 수익 계좌까지 강제 청산돼 폭락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이번 주말에만 6000개 지갑이 ADL로 청산돼 12억달러가 증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은 구조적 붕괴가 아닌 기술적 조정"이라며 "거래소 메커니즘에 따른 연쇄 청산이 시장 심리를 과도하게 악화시켰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주요 저항선을 세 번이나 돌파하지 못한 만큼, 투자자들은 당분간 '10만달러 방어선'이 유지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