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을 금융상품으로 볼 것인가, 지급수단으로 볼 것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대한민국의 디지털 금융 미래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미국은 2025년 7월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해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으로 명확히 정의하고 지급수단으로 제도화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암호자산시장규제(MiCA)」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토큰(EMT)으로 분류하여 지급결제 인프라로 편입시켰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당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만이 주가 되어 발행할 수 있는 일종의 금융상품에 가깝다는 것을 지지하는 듯한 발표가 나왔다가 '정해진 것은 없다'며 물러서는듯한 입장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한 점이 있어 이로 인한 혼선이 우려스럽다.

이미 주요국의 입장은 정리되었다. 미국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을 증권(securities)이나 상품(commodities)이 아닌 지급수단으로 명시했다.
발행인은 발행액의 100%를 현금, 단기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으로 담보해야 하며, 이용자에게 액면가 환매권을 보장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에 서명하며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패권을 디지털 시대에도 유지하게 해줄 강력한 도구'라고 천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법률로 영구 금지하면서까지 민간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육성에 올인하고 있다. EU의 MiCA 역시 2024년 6월부터 스테이블코인 규정을 전면 시행했다. 법정화폐에 연동된 전자화폐토큰(EMT)은 전자화폐기관이나 신용기관만 발행할 수 있으며, 1:1 비율의 유동성 준비금을 유지해야 한다. 핵심은 양측 모두 스테이블코인을 '지급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스테이블코인을 금융상품 유사로 분류하여 취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로벌 스탠다드와 역행하는 규제체계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우선 규제차익(regulatory arbitrage)이 발생한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상품으로 취급되면 법상 각종 규제를 더욱 강하게 받게 되고, 발행과 유통에 과도한 제약이 가해진다. 시장참여자들은 규제가 느슨한 해외로 이탈하고, 결국 국내 시장은 제도권 밖에서 작동하는 해외 스테이블코인에 종속되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양성화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자금의 지하화를 촉진하는 꼴이다.
물론 스테이블코인에 불안정한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가 보여주듯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시스템적 리스크를 내포한다.
또 화폐에 페깅된 스테이블코인이라고 하여 안전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알려진 리스크다. 주요국들은 바로 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담보 요건, 준비금 규제, 정기 감사, 파산 시 우선변제권 등 촘촘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리스크가 있다는 이유로 엄격한 규제로 원천 봉쇄하는 것과, 리스크를 인지하고 관리체계를 구축하여 제도권 안에서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이다. 전자는 혁신을 막고, 후자는 혁신과 안정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테더(USDT)와 서클(USDC)이 전체 시장의 약 85%를 점유하고 있으며,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90% 이상이 달러화에 페깅되어 있다.

2025년 상반기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4조 달러를 돌파했고, 이는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한 수치다. 미국이 CBDC를 금지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전폭 지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담보로 보유하는 미국 국채 규모만 해도 천문학적이다. 테더는 2024년 말 기준 1,000억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해 세계 최대 비주권 국채 보유자 중 하나가 됐다. 스테이블코인은 곧 '새로운 달러'이며, 미국은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도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이런 엄중한 글로벌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스테이블코인을 금융상품으로 인식하고 규제 강화에만 매몰된다면, 자칫 게임에 끼어보지도 못하고 통화주권 침식을 방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없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지면, 국내 디지털 결제 생태계 전체가 달러권에 종속된다. 이는 단순한 산업 경쟁력 문제가 아니라 통화정책 자율성과 금융주권에 관한 문제다.
원화 K-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앞으로의 숙제다. K-컬처 소비의 기본 지급수단이 되는 것만으로는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과점적 지위를 보유한 품목들 — 메모리 반도체, 방산물자, 특히 전 세계가 찾는 155mm 포탄 — 의 결제 수단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자리 잡도록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의 전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지급수단으로서 법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금융상품으로 묶어두면 시작조차 몹시 어렵다.

결국 이번 금융당국의 발언과 철회 소동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2017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사기'라고 공개 발언했던 사건과 닮아 있다.
그 발언 이후 대한민국은 글로벌 디지털자산 경쟁에서 상당 기간 후발주자로 밀려났다. 지금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일부 인식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다.
무한경쟁의 디지털 금융 시대, 발목부터 잡혀서는 안 된다. 스테이블코인을 지급수단으로 명확히 정의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규제체계를 신속히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것이 원화의 국제적 활용도를 높이고 디지털 시대 통화주권을 지키는 길이다.
금융·증권법 분야에서 30여 년 경력을 쌓은 추원식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로 공직을 시작해 법무법인(유) 광장에서 시니어 에퀴티 파트너로 활동하며 ECM·증권금융 분야를 이끌었다. 교보증권, 대신자산운용, 리딩증권 등 주요 금융사 고문변호사를 역임했고, 금융위원회 BDC 설립 추진 자문위원, 거래소 코넥스 이전 상장 자문위원으로 산업 현안에도 기여했다. 공무원연금공단·건설근로자공제회·한국농어촌공사 투자심의·법률 자문 등 공공·민간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하며 서강대 대학원 등에서 자금조달과 Pre-IPO 과정을 강의해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