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프 제조사 "안전 문제 없는데... 데이터는 스테로이드가 아니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가 손목 밴드 하나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남녀 세계 1위들이 코트에 들어서자마자 손목 장치를 벗어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얀니크 신네르(2위·이탈리아)는 26일 16강전에서 루치아노 다르데리(25위·이탈리아)와 맞붙는 도중 손목에 착용한 피트니스 트래커를 주심에게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같은 대회에서 남자 단식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와 여자 단식 1위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도 손목 밴드를 코트에서 벗었다.

선수들이 착용한 장치는 후프(WHOOP)라는 손목형 피트니스 트래커다. 화면은 없지만 심박수, 심박 변동성, 회복 상태, 활동 강도, 수면 단계, 혈중 산소포화도, 피부 온도, 호흡수, 혈압 등 거의 모든 신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블루투스를 통해 코치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전송되며, 경기 전후 선수 상태를 분석하고 훈련 계획과 회복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된다. 축구나 럭비 등 다른 종목에서는 이미 선수 부상 위험 구간을 판단하는 '레드존'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메이저 대회만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ATP·WTA 투어에서는 경기 중 착용이 허용되고, 국제테니스연맹(ITF) 역시 사전 승인을 받으면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ITF는 후프를 공식 승인하며 "경기 중 진동 기능(햅틱 피드백)만 끄면 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4대 그랜드슬램에서는 경기 중 어떤 형태의 웨어러블 장치도 허용하지 않는다. 호주오픈 조직위원회는 "대회 차원에서 이미 하이테크 카메라와 트래킹 시스템을 통해 이동 거리, 방향 전환, 스프린트 등을 분석할 수 있다"며 웨어러블 불허 이유를 설명했다.
선수들은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신네르는 경기 후 "데이터는 경기 중이 아니라 경기 후 참고 자료로 쓰려고 하는 것"이라며 "심판이 트래커를 확인하고 제거를 요구했을 때 이해는 하지만 불편했다"고 말했다. 사발렌카는 "ITF 승인을 받았는데 메이저에서 착용할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다. 이 결정은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두 선수 모두 경기 후 훈련과 회복을 위한 데이터 활용 필요성을 강조했다.
후프 측도 반발했다. 회사는 성명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의 퍼포먼스와 건강을 이해할 권리는 경기 중에도 보장돼야 한다"며 "데이터는 스테로이드가 아니다. 안전과 공정성, 경쟁 측면에서 위험이 없다"고 밝혔다. CEO 윌 아메드는 SNS에 "선수들이 몸을 측정하게 두라. 데이터는 경기 중 보조 수단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 논란은 단순 장비 적발이 아니다. 테니스 전통과 기술 혁신, 공정성과 형평성, 선수 안전과 경기 전략이 충돌하는 사건이다. 나달은 현역 시절 후원사 시계를 착용하고 뛰었고, 페더러는 경기 중 착용을 피했다. 오랜 세월 테니스는 코트에서 선수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관계자들은 "실시간 데이터까지 허용되면 테니스 고유의 매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투어에서 허용되는 기술을 메이저만 막는 건 시대착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psoq1337@newspim.com












